해부학자의 세계

콜린 솔터 지음|조은영 옮김|해나무|416쪽|2만8000원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해부학 기록은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다. 1862년 룩소르에서 이 파피루스를 구입한 미국 골동품 전문가의 이름을 따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라고 하는데, 뇌의 여러 부위를 기술하고, 머리를 다쳤을 때 몸에 나타나는 증상 등을 설명한다.

영국의 교양서 전문 작가인 저자는 유럽, 중동, 일본 등에서 출판된 해부학 책 150여 권을 바탕으로 해부학의 역사를 추적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과 해부학의 관계를 짚은 챕터다. 인간의 창의력과 지성이 정점에 올랐던 이 시기엔 인체에 대한 호기심도 절정에 다다랐다.

당시 해부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예술가였다. 해부학자들은 신체 기관에 대한 과학적 진실과 철학적 진리를 추구했지만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건 추상적·철학적 진리보다는 겉모습이었다. 초상화의 진실성을 갈구했던 예술가들은 해부학자보다 뛰어난 관찰력을 발휘했고, 다른 시각으로 인체를 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선배 격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학생들이 누드를 그릴 때 근육과 뼈를 먼저 그린 다음 피부를 입히게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살가죽이 벗겨진 인간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한 예술가도 있었다.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는 가죽이 벗겨지고 해부된 주검을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산드로 보티첼리가 바로 그의 제자다. 세기가 바뀔 무렵 최고의 작품을 생산한 르네상스 화가 세 명이 모두 해부학에 심취한 것을 우연으로 보긴 어렵다.

렘브란트의 1632년 작 회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당시 암스테르담에선 1년에 시신을 한 구만 해부할 수 있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9년 처음 두개골을 구입했고, 1507년 처음 인간의 몸을 해부했다. 그는 왁스로 뇌실의 주형을 만들어 전통적인 해부 지식과 달리 그 안에 체액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교회는 해부학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다빈치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가 바티칸에 고발했고, 교황 레오 10세는 해부 중지를 명령했다.

16세기 유럽을 해부학이 근대 과학으로 거듭난 빅뱅의 순간으로 본다면, 17세기는 해부학적 우주가 빠르게 팽창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해부학자 중 한 사람이 1628년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를 출간, 순환계 이론을 정립한 영국인 윌리엄 하비다. 하비는 몸을 순수한 기계적 관점에서 조사했다. 심장이 신(神)의 사원이라는 고대의 관점에서 벗어나 ‘펌프’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1608년 최초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복합 현미경 특허를 받았고, 이후 1624년 하비가 제작에 성공했다. 초기 현미경은 대부분 렌즈 생산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에서 발달했다. 레이던의 해부학 학교 덕에 네덜란드는 이미 해부학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레이던 출신 화가 렘브란트의 초기 대표작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는 외과 의사 길드의 회의실에 걸려고 제작된 것이다. 그림 속에서 다른 의사들에게 시신의 팔 근육계를 설명하고 있는 튈프 박사는 당시 암스테르담의 시(市)해부학자였다. 규정에 따라 1년에 시신을 한 구만 해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림 속 장면의 날짜와 시신의 신원을 정확히 알 수 있다. 1632년 1월 31일 무장 강도 혐의로 교수형을 당한 아리스 킨트다.

해부용 시신의 공급은 수요에 한참 못 미쳤다. 18세기 영국에선 해부용 시체 시장이 형성됐고, 도굴단이 갓 매장된 시체를 파서 해부학 학교에 팔곤 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1752년 영국 정부는 살인법을 제정, 처형된 살인자의 시신에 한 번 더 칼을 대는 공개 해부형을 시도했다. 대중에게 끔찍한 해부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고, 해부학자에게 더 많은 시신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법 시행 후 살인 사건이 감소해 합법적으로 해부할 수 있는 시체가 급격히 줄고 말았다. 결국 도굴꾼이 기승을 부리고, 시신 판매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일어났다.

저자는 인체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예술가들의 노력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도판 240여 점을 곁들여 대중 눈높이에 맞춰 쉽게 썼지만, 내용이 허술하거나 가볍지 않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결국 서문의 이 구절에 있다. “해부학의 역사는 인류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 각자는 몸이라는 기계 안에서 세밀하게 조정되며, 상호 의존하는 시스템의 섬세한 혼돈 가운데 계속될 오작동의 위험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해부학을 아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