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나무

그림이 있는 도서관 자개장 할머니

안효림 글·그림 | 소원나무 | 48쪽 | 1만7000원

어른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망했다’며 급히 이사 하던 날, 엄마는 낡은 트럭에 커다란 자개장을 제일 먼저 실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자개장이야. 이것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단다.” 아이는 못마땅하다. ‘칫. 자개장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덩치는 냉장고보다 큰데 이불 밖에 못 넣는 걸.’

/소원나무

엄마 아빠는 여전히 손발이 착착 맞는다. 하지만 종일 바쁘고, 아이는 내내 혼자다. 친구 따라 놀러간 태권도장은 재밌었지만 사범님은 ‘다음에 어른과 같이 오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다. ‘누구라도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바로 그 때, “짜잔~”. 자개장 속에서 낯선 할머니가 나타났다. “난 자개장 할머니! 네가 나를 불렀구나?”

/소원나무

아이는 할머니를 따라 어느새 자개장 속 세상으로 들어섰다. 학처럼 다리를 쭉 펴며 험한 산을 오르고 물살을 헤쳐 건넜다. 숨이 차도 다리가 아파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어느새 향기 그윽한 복숭아 나무 아래다. 함께 달콤한 복숭아를 배불리 먹고 나니 ‘자개장 할머니’가 말했다. “자, 이제 복숭아씨 보석을 들고 태권도장으로 가자꾸나!”

/소원나무

쉽게 만들어 쓰고 빨리 버리는 시대, 자개장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또 잃어가는 것들의 상징처럼 보인다. 아이의 부모가 손발을 척척 맞추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가는 힘 역시 대대로 물려받은 자개장 속에 담긴 사랑을 잊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닐까.

아이의 앞길에도 때론 높은 파도와 깊은 계곡이 닥쳐올 것이다. 누군가 손을 잡아 조금만 이끌어준다면, 아이도 믿음을 잃지 않고 복숭아처럼 향기로운 희망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게다가 간절히 부르기만 한다면, 자개장 할머니는 또 다시 나타나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지도 모를 일이다.

/소원나무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자개장 할머니와 떠난 모험의 세계, 외로운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현실 모두 진짜 자개처럼 무지개 색으로 영롱하게 빛난다. 자개 수공예의 느낌을 살려낸 작가의 섬세한 작업 방식이 감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