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서 ‘그러나’가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다니….” “정말요. ‘그러나’라는 말 뒤에 그런 내용이 따라올 날이 왔다니요.”

10월의 마지막 날 밤, 반(反)성착취 활동가 원은지 ‘추적단 불꽃’ 대표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중 시청자들이 남긴 댓글입니다. 이날 원 대표는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주범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 재판부 판결문을 낭독했습니다. 2년간 텔레그램에 잠복하며 주범 검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원 대표는 전날 공판에 참석해 재판장이 읊는 판결문을 일일이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판결문 내용을 들은 시청자들이 ‘그러나’가 피해자 아닌 피고인에 유리한 양형 사유를 배척하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사실에 놀라워한 건 그간의 솜방망이 처벌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는 방증이겠죠. 검찰이 징역 10년을 구형했지만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형량이) 얼마나 나오겠어…. 적게 나와도 실망하지 말자”며 서로를 다독였다고요.

이번 판결은 대중의 법감정과 법원의 판단이 드물게 일치한 사례입니다. 법감정은 군중심리일 뿐이라 사법부가 이에 영향받아선 안 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현직 판사 박주영의 에세이집 ‘어떤 양형 이유’(모로) 중 한 구절을 옮겨 봅니다. 사적 제재를 키워드로 한 이번 주 Books 문학 특집과 함께 읽어보시길요.

“‘힘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정의와 힘은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정의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쉬우나, 힘은 시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해지기 힘들다. 결국 강한 것이 정의가 되었다’는 파스칼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법적 정의도 결국 강한 힘에 불과할 뿐이다. (…) 법감정은 단순히 격앙된 감정 상태가 아니라, 힘이 약한 정의일 가능성이 높다. 들끓는 법감정은 곧 강해질 정의 아닐까?”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