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배추가 무척 비쌌다. 그래서 대신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를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냈더니 가을이 되면서 배추김치로 만든 김치찌개가 너무너무 먹고 싶어졌다. 결국 이틀에 한 번씩 김치찌개를 끓이게 됐다.
시원해야 잘 자라는 배추는 이제 국토 북극단의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지구가 더워져서 이곳에서도 배추 재배가 어려워지면,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와는 안녕이다. 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의 자포니카 쌀을 먹는 마지막 세대일 수 있다. 일본은 지난여름 쌀 부족으로 난리를 겪었다. 그들도 우리도 결국엔 더위에 강한 안남미를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인 이주량 박사는 현재 농업 정책 분야의 에이스다. 농업계 특유의 어려운 전문용어도 없고 경제 분야 특유의 침소봉대도 없는, 대중이 읽기에 나름 편안한 글을 쓴다.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세이지)를 읽고 나니, 이 책은 앞으로는 전혀 다른 미래를 살아야 하는 중고등학생들의 필독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바꿀 단초가 들어있다.
책에는 미처 몰랐던 최근 사례들이 많았다. 자체 농업 생산이 없던 싱가포르가 코로나 때 큰 위기를 겪고 새로 농업전담 기구를 정비하고, 자체 생산을 30%까지 늘리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특히 놀라웠다. “싱가포르는 국방이 없는 것처럼 지구상에서 농업이 없는 (또는 거의 없는) 유일한 나라였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식량 상황에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농업에 강하게 개입하는 스위스에서 막내에게 우선적으로 농지를 전량 상속한다는 얘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막내가 다른 형제자매보다 나이가 어려서 더 오래 농업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농업에 종사하겠다는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녀들에게 균등 상속하니 농지가 계속해서 쪼개진다. 결국은 농지 유지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주량의 책에서 ‘농업문맹’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교육과정에 공식적으로 농업교육이 거의 없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다. 그렇지만 기후변화와 함께 이제 농업은 혁명적 격동기로 들어간다. 어느 방향이 맞고, 어느 방향은 아닌지, 개인적으로도 판단할 최소한의 능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다시 더워질 내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많은 국민들이 함께 읽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