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법률가들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지음|박경선 옮김|진실의 힘|408쪽|2만3000원

1933년 4월 7일, 나치 독일의 ‘직원공무원제의 재건을 위한 법’은 모든 유대인 공무원을 해임한다고 규정했다. 제3조 1항은 “아리아인 혈통이 아닌 공무원은 퇴직 처분한다”고 명시했다. 나치 정권 최초의 반유대 법안이었다. 이후 ‘제국 시민법’은 “유대인은 독일 제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며 투표권을 박탈했고, ‘독일 혈통 및 독일 명예 수호를 위한 법’에선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을 금지했다.

나치 정권의 인종차별과 유대인 박해는 제3제국의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윤리학 교수인 저자는 나치에 동조했던 법률가들이 어떻게 히틀러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는지 살펴본다. 정권에 충성한 법률가들은 주로 고위급 관료와 대학교수였다. 이들은 히틀러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고, 정치적 목적에 맞게 법을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나치의 형법이 범죄 행위 자체가 아닌, 범죄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의도’를 중시하는 형법은 인종적·사회적 편견에 취약해졌고 범죄자 유형론 개발로 이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방조한 법체계를 통해 법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