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모습. /나무위키

언론인이자 학자인 리영희(1929~2010) 전 한양대 교수가 1974년 낸 ‘전환시대의 논리’는 올해 출간 50년을 맞았다. ‘지적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1970~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 공산주의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책을 탐독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50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이 책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역사관과 사실에 대한 왜곡과 오류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달 ‘전환시대의 논리’ 50주년 학술행사가 열릴 정도로 일부에서는 이 책의 의미를 강조한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중국 현대사 최악의 참사’라 불리는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문혁)을 일방적으로 찬양한 책 내용이다. 문혁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친위 쿠데타였으며 대규모 정적 탄압과 숙청,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는데도 아직도 일부에선 이 책에 입각해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한다. 문혁 기간 중국에서는 공식 사망자 170만명, 추정 사망자 2000만명이 발생했고 1억1300만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문혁은 전국적인 문화 파괴 운동이 벌어졌던 내란(內亂)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리영희는 문혁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집필한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전혀 다른 논지를 펼친다. 그는 문혁에 대해 ‘인류 사상 초유의 일대 실험’(86쪽, 이하 2006년 2판 기준)이라고 소개한 뒤 ‘인간을 개조하고 평등한 인간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 구조를 창조하려는 것’(96쪽)이라는 마오의 말을 인용하며 높이 평가했다.

이어 ‘세상에 하나의 경이로 비치고 있는 현대 중국의 건설’(173쪽), ‘홍위병의 공개 비판은 서구식 민주주의와도 일치하며 중국에선 1인 독재를 생각하기 어렵다’(182쪽)고 했다. 심지어 문혁 이후 실각하고 처벌받은 악명 높은 ‘4인방’에 대해서도 ‘유능한 인재로서 향후 중국의 지도부가 될 것’이라는 잘못된 예언까지 했다. 운동권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거하고 반공 우상을 깨부쉈다’고 평가하는 리영희 중국론의 실체는 사실 왜곡이었다.

책의 논리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서구 문명과 다른 독자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마오에 대한 개인 숭배가 정당하다는 사대주의적 입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중국 근대화 투쟁의 사상적 기조는 서구 문명의 부정과 극복’(154쪽)이라 쓰면서 ‘성왕(聖王)의 이상과 그 밑에서의 평화와 대동(大同) 사상은 모택동 숭배 현상을 이해할 근거가 돼 준다’(156쪽)고까지 적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굴종적 태도는 이 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리영희는 문혁의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반미주의·친중주의·사회주의에 근거해 편향되고 왜곡된 정치 서술을 했다”며 “대중을 동원한 권력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문혁의 본질에 대해선 철저히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당시 리영희의 시각이 독창적인 것도 아니었다. 한상일 국민대 명예교수는 “당시 일본 좌파 잡지 ‘세카이(世界)’ 등이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과 북한을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본 논지가 리영희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