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11월답지 않게 연일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었죠.
이토록 긴 가을도 오랜만입니다.
봄·가을이 짧아지면서 트렌치코트가 잘 팔리지 않는다더니,
거리엔 트렌치코트 차림의 사람들이 넘쳐 났습니다.
“가을을 이렇게 오래 만끽할 수 있다니, 지구 온난화에도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노란 은행잎이 뒹구는 포도(鋪道)를 걸으며,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귓가에서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에 새벽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모기는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체온을 낮추는 데 에너지를 주로 사용해서 활동이 줄어든답니다.
기온이 섭씨 12도 이하로 내려가면 활동하지 못하고요.
연일 폭염이 지속되었던 지난 여름엔 움직이지 못했던 모기가,
이제서야 비로소 활개치기에 최적의 온도를 찾은 모양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모기를 쫓다가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는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첫 창작집 ‘만년(晩年)’에 실린 단편 ‘잎’의 한 구절.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나’는 어릴 적 자신을 무척 사랑해주었던 할머니의 이 말을 회고합니다.
게이샤 출신인 할머니는
평생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남의 첩 노릇을 하다 별채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누나가 혼인한 어느 가을날 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을 깬 ‘나’는
긴 복도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신방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합니다.
할머니는 아름다운 눈빛으로 ‘나’를 골똘히 들여다보며 말하지요.
모기는 결국 잡지 못했습니다.
가여워서가 아니라 재빨라서요.
이번주 기온이 급강하했으니 ‘슬픈 모기’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요.
얼마 남지 않은 가을날, 찬란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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