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창작자의 영감은 신의 계시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들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오히려 영감은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온 일상, 혹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창작은 영감이라는 빅뱅이 펑 하고 폭발해 만들어지기보다, 작가를 이루는 별들을 이어 그린 별자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쌓아 올린 ‘나’라는 인간을 목적과 의식을 가지고 천천히 뜯어내 다시 쌓는 행위다.”

최근 종영한 TV 드라마 ‘정년이’ 원작 웹툰 스토리 작가인 서이레 산문집 ‘미안해 널 미워해’(마음산책)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단을 소재로 국극에 대한 열정으로 몸과 마음을 불사르는 여성들을 그려낸 작품. 가난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윤정년과 유명 성악가의 딸로 성실한 노력파인 허영서가 서로 경쟁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서이레 작가는 대학생 때 현대문학사 수업을 듣던 중 친구가 보내준 1950년대 여성 국극 공동체에 대한 논문을 읽고, ‘정년이’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관련 자료가 없어서 헌책방을 뒤져 여성 국극 배우들의 회고록과 평전을 구하고, 도서관 책을 빌려와 발췌하고, 여성 국극을 소재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도움을 구하는 등 사방팔방 뛰었다고요. 그렇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웹툰으로도, 창극으로도, 드라마로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서이레는 말합니다. “나는 창작을 하다가 내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아는 것이 없어서 막힐 때 가장 공포스럽다. 그럴 때는 이 창작적 가난을 들킬까 두려워 얼른 책과 자료를 찾아다 읽는다. 세상이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미 내 속에 있어야 한다. 창작을 마음먹은 바로 ‘그 사람’이 영감이다.” 결국 창작자가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겠지요.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