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대가

티모시 브룩 지음 | 박찬근 옮김 | 너머북스 | 336쪽 | 2만6500원

중국에서 한족(漢族)의 마지막 통일 왕조인 명(明)나라(1368~1644)가 왜 멸망했는지 묻는다면 많은 이가 ‘임진왜란의 여파 아니냐’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적 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만주족이 침략했고, 세수(稅收) 감소에 이어 이자성 같은 농민 반란군이 봉기했다. 그런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로 중국사 전문가인 저자는 더 근본적으로 역사를 움직인 힘을 찾아낸다. ‘기후’였다.

1630년대 말 중국은 전례 없던 한파와 가뭄, 전염병, 돌풍, 지진, 메뚜기 피해에 휩싸였고 수백만 명이 사지로 내몰렸다. 1642년이 되면 시장엔 살 수 있는 쌀이 없었으며 빈자들은 썩은 음식을 찾아 헤맸다. 기근 시기의 곡물 가격이 기후변화의 지표임을 감지한 저자는 사료 3000권 중 곡물 자료 777건을 분석한 결과, 이 시기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이 소빙하기의 절정에 일어난 전 지구적 기후 악화 때문이었음을 밝혔다. 뛰어난 수준의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명 왕조로서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후 위기였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역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