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모식 템킨 지음|왕수민 옮김|어크로스|456쪽|2만2000원
저자 템킨 하버드대 교수는 케네디스쿨에서 10년 넘게 역사와 리더십에 대해 강의해 왔다. 그가 관심을 갖는 리더는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비상한 용인술을 발휘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저자는 정치인이나 사회활동가들을 골라 그들의 리더십이 자기 시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역사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들여다본다.
책에 소개된 이들 중 일본에 원폭 투하를 결정한 해리 트루먼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리더십 명언을 즐겨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트루먼을 진정한 리더로 보지 않는다. 트루먼이 내린 결정의 본질은 책임감 있는 리더의 위대한 결단이 아니라 “어떻게든 전쟁에 이겨야 한다”는 압력에 짓눌린 정치인 트루먼의 손에 마침 그 과제를 실행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쥐어져 있었던 ‘상황’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핵폭탄 두 방에 무릎 꿇은 히로히토 일본 덴노(天皇)도 항복이라는 결정을 내린 리더다. 그러나 그의 항복은 ‘핵폭탄 투하’라는 상황에 떠밀려서 내린 결정이지 리더의 결단은 아니다. 그가 진정한 리더였다면 4년 전인 1941년, 군부가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려 할 때 이를 막는 선택을 해야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공공선의 추구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리더는 전사가 되고 주류에 맞서는 반란자가 되고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원제 ‘전사, 반란자, 성자’(Warriors, Rebels, and Saints)에 그런 생각을 담았다.
책은 이런 조건을 갖춘 리더이면서도 서로 반목한 이들을 비중 있게 다룬다.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오늘날 인도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인 두 리더였지만, 정작 두 사람은 카스트 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간디는 인도의 모든 카스트가 합심해 영국에서 독립을 쟁취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불가촉천민 출신인 암베드카르는 “신분제가 존속하는 한 인도는 내 조국이 아니다”라며 인도 안에서 하층민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저자는 둘의 노선은 달랐지만 공공선을 위해 싸우고 투쟁하고 희생했기에 참된 리더들이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캐리 채프먼 캣과 앨리스 폴 두 여성도 노선 대립을 벌였다. 캣은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라도 여성이 합당한 정치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며 온건 투쟁론을 폈다. 반면, 폴은 거리에서 투쟁하고 감옥 가고 고문당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이루려 했던 급진파였다. 둘은 반목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강온 양면을 각자 맡음으로써 여성 참정권 쟁취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룬 리더들이었다.
책의 앞부분에 소개된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진정한 정치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대공황 시기 미국을 이끈 두 대통령 허버트 후버와 루스벨트의 리더십을 자세히 비교한다. 후버는 지나친 원칙주의를 고수하다가 대중에게서 멀어졌다. 그로 인해 대공황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정치 리더십 자체를 상실했다. 반면 루스벨트는 철저히 국민 속으로 들어갔다. 뉴딜 정책을 비롯해 그가 내놓은 여러 정책은 완벽하긴커녕 곳곳에서 하자를 드러냈음에도 유권자들에게 그가 국가를 위해 무언가 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1차 대전 상이군인들이 생활고를 해결해달라며 백악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자 후버는 불법을 엄단한다며 발포해 사상자를 냈다. 반면 루스벨트는 사회보장법과 노동법을 정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런 조치들로 인해 좌파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감수했다. 훗날 루스벨트는 노변정담이라 불렸던 한 라디오 연설에서 이탈리아 파시즘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중략) 리더십 없이 갈팡질팡 헤매며 무력한 정부 탓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국 절망감 속에 자유를 희생하기로 선택한 겁니다.” 리더로서 자신은 미국이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지는 최악만은 막기 위해 뭐든지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대로 진정한 리더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라가 파국적 상황에 빠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공공선을 이루기 위해 싸우고 맞서고, 때론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리더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