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는 ‘해가 죽던 날’을 읽는 한국 독자에게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다른 언어와 구조, 남다른 서사 방식으로 완전히 새롭고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요. ‘남다름’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했다면 펜을 들 수 없었을 겁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해가 죽던 날

옌롄커 장편소설 |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520쪽 | 2만2000원

옌롄커(閻連科·66)는 위화, 모옌과 함께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巨匠)으로 불린다. 아시아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 주요 작품이 중국 정부로부터 수차례 판매 금지를 당해 ‘금서대사(禁書大師)’ 같은 별명도 붙었다. ‘일광유년’ ‘레닌의 키스’ ‘딩씨 마을의 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등이 유명하다. 요즘은 홍콩과기대와 중국 런민대에서 학기를 번갈아가며 강의한다.

지난 10월 ‘해가 죽던 날’(2015) 국내 출간을 계기로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하룻밤 동안 한 마을이 악몽에 사로잡히는 이야기. ‘집단 몽유(夢遊)’에 빠진 마을을 열네 살 소년 넨넨의 시선으로 풀어간다. 근황을 묻는 말에 옌롄커는 “강의 외 시간에는 틈틈이 ‘중국고전문학사’를 읽고 있다”고 했다. “제 생활을 둘러싼 특별하고 뜨거운 화제는 별로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조용한 강의와 열독의 생활이 정말 좋습니다.” 옌롄커의 25년 지기인 김태성 중국 문학 번역가가 인터뷰 번역을 맡았다.

-화장장과 시신 기름이 가득한 동굴…. 이미지가 섬뜩하다.

“‘해가 죽던 날’을 읽는 것은 약재를 우려낸 탕약을 마시는 과정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사람들이 ‘문학쾌적증’(옮긴이: 문학의 맛을 알게 해주는 상태)을 누릴 수 있도록 조제된 탕약이라고 할 수 있다.”

-미(美)보다는 추(醜)가 압도한다.

“나에게는 소설의 가장 신성한 부분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추(美醜) 혹은 시적 정취가 아니라 ‘진실’과 ‘진실감’이다. 진실이 소설의 신앙이다. 게다가 나는 글쓰기 과정에서 음산한 두려움을 체감하지 못했다. 내가 체감한 것은 ‘진실의 전율’뿐이다.”

-몽유는 무엇을 상징하나?

“언어권마다 독자의 이해가 같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일본의 독자는 중국과 좀 더 밀착해 있어 이해가 비교적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더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내 소설을 설명한다는 것은 의사가 자신에게 외과 수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2014년 산문 ‘침묵과 한숨’이 올해 초 영어로 번역돼 호평받았다. 첫 장에 ‘어둠을 느끼도록 하늘과 삶이 지명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산문집은 10년 전 미국의 여러 대학을 다니며 한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둠을 가장 잘 느끼는 사람’이다. (이 인터뷰에 답하기) 이틀 전에 나는 타이완의 한 문학상 기관에 이런 글을 써서 보냈다. ‘나는 항상 어두운 집의 창문 앞에 서서 그 어두운 집 안을 훔쳐보고 있다. 그 어둠 속에 한 가닥 빛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만일 한 가닥 빛이 있다면, 그 빛과 어둠 속에서 그 집 안에 어떤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고 어떤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한 가정 혹은 농축된 세계를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된 것은 내가 그 어두운 집 안을 훔쳐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금서 작가’라고 불리기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독자들이 내 작품이 ‘금서’이고 ‘금서가 가장 많은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문학성 때문에 읽기를 바란다.”

-당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줄곧 현실과 대치하는 창과 방패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내 소설이 된다. 현실에 대한 관심과 의심스러운 눈초리, 역사에 대해 한 번도 멈추지 않은 회의,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곤경에 대한 폭로가 제 소설에서 변하지 않고 일관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장은 서서히 퇴장을 준비한다. 예리한 답변 뒤에는 고뇌가 깃들어 있다. 최근 장편 ‘캄캄한 낮, 환한 밤’(2019) 작가 후기에서 그는 “오늘처럼 글쓰기가 무의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 글에는 ‘커튼콜을 향해가는 글쓰기’라는 제목도 붙였다. 그는 “퇴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50세 이후로 안개처럼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며 “그 근본적인 이유는 고독”이라고 했다.

“글쓰기 이후 받는 단절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머릿속 문서들 사이에 끼워져 있는 고독과 영원히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는 부적응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 생활 속에서 갈수록 더 진해지고 갈수록 더 맹렬하며 격렬해집니다. 갈수록 더 피할 수 없지요. 이런 것들이 저로 하여금 수시로 펜을 꺾을 준비를 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