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 중 다수에서 ‘세계(cosmos)’라는 단어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요쿠트족이 “세계가 지나갔다”라고 하면 “한 해가 지나갔다”라는 의미이고요. 유키족에게도 ‘해(year)’라는 말은 ‘지상’ 혹은 ‘세계’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책 ‘성(聖)과 속(俗)’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엘리아데는 “이런 어법은 세계와 우주적 시간 사이에 밀접한 종교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합니다. “코스모스는 태어나고 자라나다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사망하여 새해 첫날 재생하는 살아있는 단위로 간주된다.”
고대의 인간에게 세계는 해마다 갱신되는 것이었고, 새해란 그 세계가 창조주의 손에서 빚어질 때의 신성성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고 하네요. 바빌론에서는 연말연시에 세계의 창조에 대한 시를 낭송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왕은 새해를 축하하며 “여기 새해의 새 달의 새 날이 있다. 시간이 닳게 만든 것은 갱신되리라”고 말했답니다.
현대의 우리 역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례를 치릅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사실 연속적인 시간인데, 인간은 왜 굳이 해의 구분을 두어 단절시키는 걸까요? 엘리아데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한 해의 모든 ‘죄’, 시간이 더럽히고 닳게 만든 모든 것은 무화된다. 세계의 무화와 재창조에 상징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간 역시 새롭게 창조된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므로 새롭게 태어나는 셈이다.”
2024년 마지막 Books 지면은 ‘올해의 저자’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일곱 명의 저자가 한 해 동안 글을 쓰도록 한 힘을 이야기합니다. 올 한 해는 독자 여러분께 어떤 세계였나요? 지난 1년간 우리를 읽도록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남은 날들, 가지런히 마무리하시고 가뿐한 마음으로 새해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