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노랑무늬영원

한강 소설집 | 308쪽 | 문학과지성사 |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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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장편소설 | 260쪽 | 문학동네 | 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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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남현지 시집 | 136쪽 | 창비 | 1만6500원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깜깜한 바다에 내던져진 것만 같다. 새해에는 우리 주변에 희미하게나마 빛이 보이고, 평온함이 깃들기를. 사람들이 다친 상처를 찬찬히 꿰매고, 아픈 마음을 추스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지금 문학은’ 특집으로 회복을 기원하고 위로를 전하는 시와 소설을 추렸다.

◇어디선가 울려오는 마음

2003~2012년까지 쓴 단편을 모은 한강의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은 ‘회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 단편 ‘회복하는 인간’이 수록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을 곁에 두고 고통스러워하며 한없이 침잠하지만, 밀려오는 삶의 감각들에 의해 건져 올려지기를 반복한다. ‘어디서 들어오는 건가, 이 조용한 마음은. 어디서 이 마음 – 살고 싶다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울려 오는 건가.’(표제작 중에서)

표제작 속 ‘나’는 사고로 왼손을 다쳐 쓸 수 없게 된다. 오른손마저 통증에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화가로서의 삶은 물론 일상조차 버거워진다. 자꾸만 삶과 멀어지던 ‘나’는 친구 아들이 키우는 도마뱀 영원을 만난다. 화려한 불도룡뇽 ‘노랑무늬영원’에서 따온 이름. ‘나’는 부주의한 사고로 앞발이 잘린 영원에게서 돋아나는 ‘조그맣고 연약한, 투명한 흰 빛의 두 발’을 본다. 도마뱀의 재생력과 대낮의 태양 같은 노랑의 힘에 이끌린다. ‘노랑무늬영원, 하고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영원이란 도룡뇽과에 딸린 속명일 뿐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 동명이의어의 울림은 가냘프게 내 마음을 움직인다.’

◇빛이 드는 순간, 연결되는 온기

‘빛과 멜로디’는 조해진이 ‘단순한 진심’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 빛이 드는 순간, 찰나의 온기를 모아 은은하게 독자를 감싸는 듯하다. 분쟁 지역 사진을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권은과 잡지사 기자 승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홀로 지내던 열두 살 권은을 찾은 반장 승준. 그는 그녀에게 카메라를 선물하고, 권은은 카메라를 통해 삶의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다.

국적과 나이대가 다른 여러 인물이 얽히고, 겹치며 이들이 서로 ‘호의’를 주고받는 순간이 차분히 그려진다. 승준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사는 나스차와 화상 인터뷰를 한다. 나스차는 뱃속의 아기와 함께 전쟁의 공포를 견디고 있다. 권은은 레스보스섬의 난민 소녀 살마가 영국으로 떠나는 것을 도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승준은 나스차가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있게끔 살마와 연결해준다. 조해진은 작가의 말에서 “세상 곳곳에 여전히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서. 아픈 그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이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했다”고 썼다. 결국 연대감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해 준다. 지난해 8월 출간작.

◇우주에 말을 건네는 단단함

지난달 나온 남현지의 첫 시집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은 제목만으로도 휘어잡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아침이면 연어가 도착’(‘전자랜드’)해 있는 이상한 세계에 산다. 이 세계에서 타인은 적(敵)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지하철 한 칸 안에서 점점 늘어나/ 서로 싫어한 지 오래되었다.’(‘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듯하다. ‘언제부터/ 고통 없는 세계/ 그건 상상을 안 합니다.’(‘빛의 생산’)

그래서인가. 세계에 살짝 앙심을 품어보기도 한다. ‘상황버섯을 팔던 상인은/ 실은 돈을 모아서 /포카라로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거기서 인류의 멸망을 기다릴 거라고 (중략) 나는 기쁩니다/ 버섯은 얼마입니까.’(‘앙코르와트의 버섯 상인’) 하지만 우리는 멸망보다 시작을 꿈꾸는 게 낫다는 것을 안다. 설령 그것이 아주 작은 시작일지라도. ‘마트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약속이 남아 있다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중략) 이 무수한 우주에 계속해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화자가 우주에 당돌하게 말을 건넬 때, 쉽게 엎어지지 않는 그 단단함을 한없이 부러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