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줄리언 보저 지음|김재성 옮김|뮤진트리|420쪽|2만3000원
‘I Seek a Kind Person(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끊는 사랑이 담겨 있다. 1938년 8월 3일 영국 신문 가디언의 전신인 ‘맨체스터 가디언’에 실린 구인 광고의 일부다. “총명한 우리 아들을 교육시켜 줄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11살, 빈의 반듯한 가정 출신.”
가디언 워싱턴 특파원인 저자는 2020년 12월 회사 기록보관소를 통해 이 광고를 찾아낸다. 광고를 의뢰한 사람은 저자의 할아버지, 광고에 나오는 ‘아들’은 저자의 아버지 로베르트다. 1938년 3월 나치의 오스트리아 병합이 이루어지며 유대인들이 무작위로 수용소로 끌려가자, 빈의 유대인 부모들은 자식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탈출시키려 발을 동동 구른다. 비자 취득이 어려운 미국보다 영국이 진입 장벽이 낮았다. 맨체스터는 런던 외곽의 영국 최대 유대인 공동체가 위치한 곳이었고 섬유 무역을 통해 빈과 유대 관계가 확립돼 있었다. 게다가 ‘가디언’은 나치 치하 유대인들의 곤경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6월 7일 처음 등장한 이 광고는 8, 9, 10월에 최고점을 찍었다. 빈, 프라하, 베를린으로부터 유대인 아이들 만여 명을 영국으로 데려온 조직적 구제 캠페인 ‘킨더트란스포트’가 개시된 11월부터 잠잠해졌다. 광고에 실린 아이들은 총 여든 명이었고, 거의 전부 빈 출신이었으며, 아이들의 장점은 한 줄에 1실링이라는 비용과 제한된 공간에 맞춰 간략히 묘사되어야만 했다.
책은 저자가 아버지처럼 광고란에 실린 아이들 7명을 찾아 그들의 빈 탈출 과정 및 이후의 삶을 취재해 쓴 논픽션이다. 심리학자였던 저자의 아버지는 약물 과다 복용과 가출, 실종을 반복하다가 “견딜 만한 출구가 달리 보이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198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의 극단적 선택을 유일하게 이해한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아버지가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위탁모가 되어준 낸스였다. “로베르트는 나치의 마지막 희생자였어. 놈들에게 결국 당한 거야.” 낸스의 이 말을 실마리 삼아 저자는 아버지의 과거 행적을 복원하고, 마침내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의 고통과 상처를 이해하기에 이른다.
“14세 된 제 아들을 가정교사로 거두어주실 친절한 영국 가정이 있을까요?” “바느질 솜씨 좋고 가사를 거들 수 있는 14살 난 제 딸을 위한 일자리를 찾습니다. 교양 있는 유대인으로 아이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변호사의 재능 있는 14세짜리 딸을 양녀로 삼아주실 분?”….
광고 속 아이들은 부탁합니다(please), 감사합니다(Thank you), 공중화장실(lavatory) 같은 필수 영어 표현만 급히 외운 채 위급할 때를 위해 부모가 쥐여준 보석이며 금붙이를 몸에 숨기고 기차에 실려 영국으로 향한다. 저자의 아버지처럼 좋은 위탁 가정을 만난 아이도 있었지만, 냉대나 성적 학대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춘기를 유보당한 채 부모의 비자 및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던 이들은 대부분 다시는 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서서히 고아가 되어갔다.
상실의 무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평생 이들을 짓눌렀다. 새로 찾은 조국에선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경계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나는 내 머리가 아닌 가슴에 호소하는 정치인은 누구든 신뢰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한 침묵이 자녀들과의 관계를 짓눌렀고, 공포와 트라우마가 자식들에게 대물림되기도 했다.
1938년 10월 웨일스의 위탁 가정에 도착한 열한 살의 아버지는 찻주전자가 증기를 내뿜는 소리를 나치 돌격대의 호루라기 소리로 착각해 공황 증세를 보였다. 경찰에 신상 등록을 해야 한다는 위탁모의 말에 실신하기도 했다. 경찰서에 간 유대인이 살아 돌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겁에 질린 소년에게 처음으로 유대감을 안겨주었던 위탁모의 집이었다.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이 굴절시킨 부모와 자식 관계를 경험과 취재에 기반해 정교하게 풀어간 수작이다. 매끄러운 문장 덕에 가독성이 높지만, 주제가 무거워 책장을 쉬이 넘기긴 어렵다. 그러나 슬픔만으로 얼룩진 책은 아니다. ‘가디언’의 아이들 중 한 명인 리스는 저자에게 말한다. “나는 나의 과거와 그것이 남긴 트라우마를 마주 대하되 그로 인해 삶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그게 지난 수년간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해 견지한 철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