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 변호사

2016년 말 여든 살 할아버지가 아내에게는 이혼 소송, 친척들에게는 재산 소송을 하겠다며 흥분한 상태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법적 사유도 없을뿐더러 범죄 혐의점도 존재하지 않는 의미 없는 소송이었다. “어르신, 이러시는 이유가 뭔가요.” 변호사가 묻자, “재판에서 얼굴이라도 보려고 했지. 껄껄.” 노인의 대답이었다.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부키)를 쓴 천수이(40) 변호사가 겪은 이야기다. “사실 어르신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가족과 관심 어린 사랑이었죠.”

천 변호사는 서울 신림동 달동네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고 봉사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우리도 가난한데 왜 저들을 도와야 하나’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 가난을 싫어했던 그의 꿈은 돈 잘 버는 변호사였다. 밤낮으로 공부한 덕에 2016년 로스쿨 졸업과 함께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그해 7월 오랜 목표와는 달리 취약 계층 대상 무료 법률 상담소 ‘법률홈닥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마음 깊은 곳에선 저도 모르게 어릴 적부터 봐 왔던 부모님의 삶을 존경하고 있었던 거죠.”

그의 책은 차가운 법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빈틈을 사람의 온기로 채워 간 682일의 기록이다. 억울하게 아동 추행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다녀온 노숙자,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임신한 몸으로 집을 뛰쳐나와 과거를 숨기고 재혼한 여성 등 여러 기구한 사연을 접하며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법적 조언이 모든 걸 해결하진 않아요. 위로와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