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8일, 독감을 앓던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TV로 중계되던 국빈 만찬 중 구토하며 쓰러졌다. 1938년 3월 1일,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는 자신이 창조한 수퍼맨 캐릭터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단돈 130달러에 팔았다. 미국의 첫 다섯 대통령 가운데 세 명이 공교롭게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사망했다.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은 1826년에, 제임스 먼로는 1831년에.
논픽션 작가 마이클 파쿼의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추수밭)은 704쪽을 이런 에피소드들로 가득 채웠다. 당연하게도 1년 365일 모든 날이 누군가에게 최악의 하루 기념일이다. 로마에서 순교자 텔레마코스가 검투 경기를 말리다 관중의 돌에 맞아 죽은 1월 1일부터(404년), 미국 정부가 산업용 알코올에 섞는 메틸알코올 양을 배로 늘려 밀주를 마시는 국민을 사실상 독살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12월 31일까지(1926년).
읽으면서 인류애가 샘솟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어떤 인물이 겪은 불운을 냉소적으로 서술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 정부나 기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때로는 어떤 날 발생한 사건이 인류 전체에게 불운이었다고 선언한다. 얄밉지만 고약한 재미는 있다. 악명 높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가 2007년 그날 방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10월 14일은 최악의 날이라는 문장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피식 웃게 된다.
저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웃음 외에도 독서의 기묘한 순작용이 또 있었다. 인간 사회에는 불운과 어리석음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우리 시대라고 예외일 수는 없음을 책장을 넘기는 동안 새삼 깨닫고 차분해졌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2024년을 보내고 2025년을 맞이했다. 내가 겪은 어떤 불운한 날도 수리남의 육상 선수 지그프리트 빔 에사자스의 9월 2일처럼 기가 막히지는 않았다. 1960년 수리남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에사자스는 그날 경기 시간을 잘못 통보받아 뛰지 못했고 이후 45년 동안 ‘늦잠 자느라 대회를 놓쳤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