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곡 ‘고향으로 가는 배’에서 나온 배 있잖아요? 거기 합창단 250명을 태우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자는 거예요. 나훈아 선생님이! 그럼 배가 얼마나 커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아찔했죠.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그 계획은 무산됐지만요, 하하!”
추석 연휴 시청률 29%를 기록하며 ‘나훈아 신드롬’을 일으킨 KBS2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총지휘한 이훈희 제작2본부장은 나훈아 공연 미학의 핵심을 ‘스케일’과 ‘디테일’로 요약했다.
“거대한 스케일에 깨알 같은 디테일을 채우는 게 나훈아 공연의 핵심이었죠. 직접 북을 치며 ‘잡초’를 부르는 무대,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 매달리는 퍼포먼스까지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관객이 숨 쉴 틈 주면 안 된다, 눈을 못 돌리게 해야 한다, 2시간 40분 공연을 2분 40초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매번 강조하시면서.” 세 시간 가까운 방송 시간 동안 중간 광고가 단 한 번도 없었던 점, 무대에서 옷 갈아입는 장면까지 공연의 일부로 구현한 건 그 때문이다.
KBS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나훈아 측과의 만남이 성사된 건 지난 2월 무렵이다. 그동안 KBS 측의 집요한 요청에도 응하지 않던 나훈아였지만,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원래는 광화문이나 올림픽공원에서의 야외 공연을 기획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한정없이 길어지면서 비대면으로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 무대 연출 계획은 나훈아 머릿속에 오래전부터 쌓여 있었다. 이 본부장은 “라스베이거스 쇼 등 전 세계 유명 공연을 섭렵해서인지 배 띄우는 건 누구 공연, 기차는 어느 뮤지컬 참조하면 된다고 척척 나왔다”면서 “셀린 디옹 공연만 해도 11번을 봤다더라”고 했다.
무관중 공연은 나훈아에게도 첫 모험이다. 이 본부장은 “비행기로 치면 ‘공중급유’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연하는 거라 정말 걱정됐다”고 했다. ‘랜선(인터넷) 관객’은 그렇게 등장했다. 1400명 랜선 관객을 위해 KBS홀 관중석과 무대 앞뒤 좌우에 가로세로 50㎝ LED 타일 6000개를 깔았다. 면적만 1500㎡(454평)로 국내 방송 사상 유례없는 규모다. 이를 통해 나훈아가 수많은 관중에게 둘러싸인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수원과 KBS 별관 세트장에서 녹화해 비대면으로 참가한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포함해 무대에 오른 인원은 500여 명. 나훈아는 실황 중계나 다름없이 진행된 녹화에서 의상 19벌을 갈아입으며 29곡을 쉬지 않고 소화했다. 나훈아는 연습 과정에서도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이 본부장은 “두 달 가까이 집중 연습을 한 KBS 별관 스튜디오에는 항상 나훈아가 먼저 출근해 있었다”며 “협연자들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시락 먹는 시간을 빼고 계속 노래하는데도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고 탱글탱글하더라. 마음에 들 때까지 연습, 또 연습을 반복하면서도 고생하는 스태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단짠 단짠’의 대가였다”고도 했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 본 적 없다” “KBS가 눈치 안 보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고 해 뜨거운 화제가 된 나훈아 발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해석의 자유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열린 사회"라면서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강조한 발언으로 본다”고 했다. KBS 언급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방송 후 나훈아 쪽에서는 어떤 연락도, 피드백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 봄 홀연히 나타나 ‘코로나로 힘든 국민들 위해 뭔가 해야겠다’던 날처럼 느닷없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이훈희 본부장은 KBS 예능국 PD 시절 ‘쟁반노래방’ ‘날아라 슛돌이’ 등을 히트시킨 주역. 2007년 KBS를 떠나 SM C&C 등 독립 제작사 대표로 일하다 지난해 KBS 예능 수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힘들었지만 행복했고 KBS로서도 크나큰 선물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