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노골적으로 중국풍 소품과 의상을 사용한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다음 주로 예정된 다음 편 방송을 전면 중단하고, 문제 장면을 삭제한 뒤 방송하기로 했다. 시청자들의 불만이 커진 데다 삼성전자 등 주요 광고주들 사이에서 광고 철회 움직임마저 일자 특단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른바 ‘김치공정’ ‘한복공정’ 등 국가 정체성을 건드리는 일부 중국인들의 태도와 현 정부가 보여준 대중 저자세 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SBS는 24일 사과문을 공식 발표했다.
이 드라마는 악령을 쫓기 위해 중국 명나라를 통해 서역의 구마사를 조선에 들여온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2일 첫 회에 방송된 연회 장면에서 월병, 피단, 중국식 만두 등을 식탁에 올렸고, 극중 의상과 군사들이 사용하는 검(劍)까지 중국풍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또 장차 왕이 될 충녕대군(세종대왕)이 병풍처럼 연회장 한쪽에 서서 사신을 맞는 장면도 모욕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tvN 드라마 ‘빈센조’가 중국 비빔밥을 극중 광고 소품(PPL)으로 사용해 시청자들의 반발을 산 데 이어, 중국의 한 김치 공장에서 알몸 차림 인부가 배추를 절이는 영상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등 반중(反中) 감정이 누적된 상태에서 이 드라마가 또 하나의 군불을 지핀 셈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복이나 김치를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억지, 사드(THAAD) 배치 이후 우리 기업을 쫓아내는 등 중국이 보여준 태도 등은 우리 국가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면서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가 ‘공정함’인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힘만 믿고 횡포를 부리는 중국의 태도는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선 ‘짱개(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 ‘중국 것은 믿고 걸러야 한다. 놀랍지도 않다’ 등의 반응도 많았다. 한·중 네티즌 간 다툼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SNS인 웨이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왜곡된 드라마 장면을 옹호하고, 한국 네티즌들은 보배드림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역시 짱개들이다’ ‘작가가 중국 돈 먹었냐’ 같은 표현을 동원하며 맞서고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과 중국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흔히 말하는 ‘국뽕’ 계열의 자극적 콘텐츠를 생산해온 것이 양국 네티즌 간 갈등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며 “이번 논란의 본질은 작가의 상상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에 있는데, 이번 작품은 역사 고증이 너무 안 되다 보니 더 구설에 오른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 제작사인 YG스튜디오플렉스·크레이브웍스·롯데컬쳐웍스는 이날 “예민한 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극중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 일행을 맞는 장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 삭제해 다시 보기와 재방송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