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내보내는 ‘지상파 중간광고’를 전면 허용키로 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허용하지 않았던 지상파 중간광고의 빗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풀린 것이다. 정부가 임기 말 보궐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상파에 ‘선물’을 안겨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31일 전체회의를 열어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오는 6월부터 45~60분 분량 프로그램은 1회, 60~90분 프로그램은 2회씩 중간광고를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이를 넘어설 경우, 프로그램 길이가 30분 늘 때마다 1회씩 추가해 프로그램당 최대 6회까지, 회당 1분 이내로 중간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이는 종편·케이블TV와 동일한 규정으로 광고에서 지상파와 유료 방송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서울YMCA는 이날 “정부가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는 지상파 민원 해소용 정책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종편·케이블과 구분 사라져... 지상파 특혜의 완성”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지상파가 줄곧 요구해온 방송 관련 특혜가 이번 정부에서 완성됐다”며 “(정부는) 매체 간 균형 발전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비(非)지상파 매체가 피해 보는 일이 우려된다”고 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동안 광고 시장 축소에 따른 경영난을 호소하며 광고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상·간접광고(2010년)→광고총량제(2015년)→중간광고(2021년) 순서로 꼬박꼬박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지상파들이 ‘민원’ 해소를 위해 역대 정권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상파가 일반 케이블TV와 달리 전파를 독점 사용하기 때문에 민간 사업자인 종편·케이블TV와는 다른 차별적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지상파들은 통신기업들이 부담하는 수준의 주파수 사용 대가도 내지 않으면서 수십 년 동안 방송을 해왔고, KBS·EBS는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통합시켜 강제 징수하는 특혜까지 누리는 만큼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업자들(종편·케이블TV 등)과 같은 조건에서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간광고는 다른 광고 형태에 비해 시청권 침해 가능성이 높고, 매체 간 불균형을 심화할 우려가 커 역대 어느 정부도 허용하지 않았던 정책이다. 신문협회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중간광고 도입으로 지상파는 매년 1114억~1177억원 수익이 나는 반면, 신문은 해마다 201억~216억원씩 수익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공·민영이 혼재된 지상파방송의 광고 규제가 완화되면 공영방송이 급속도로 상업화될 것”이라며 “이번 중간광고 허용을 정권 입맛에 맞는 보도에 대한 대가로 보는 시각도 있는 만큼,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마저 위협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전문가들, “국민의 시청권 훼손 우려”
방통위가 시청자 불편을 초래하고 시청권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YMCA시청자운동본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그동안 시청자 권익을 침해해온 지상파의 편법 중간광고(분리편성광고·PCM)에 면죄부를 주듯 중간광고를 합법화해준 것은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방통위는 시청자 다수에 대한 여론조사를 통해 방송 전파의 주인이며 수신료를 납부하고 있는 시청자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남재일 경북대 신방과 교수는 “아무리 지상파의 경영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지상파에 중간광고까지 허용하는 것은 시청자의 주권을 해치는 것임이 분명하다”며 “방송의 상업적 경영 논리가 방송의 공영적 역할을 침해한, 시청자 입장에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