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쩡! 열쩡! 열쩌엉….”
지난 4일 ‘한사랑산악회’ 회원들은 서울 인왕산을 올랐다. 산자락 입구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열정’을 3번 외치는 것은 이들만의 의식.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이 10분 안팎 분량 유튜브 산행(山行) 영상이 회당 70만~80만회, 많은 것들은 100만 이상 조회수를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중년 남성 4명으로 이뤄진 회원들은 산길 옆 벚꽃 아래서 사진을 찍다 머리에 앉은 꽃잎을 털어내며 “아, 아, 내 머리카락” 하며 ‘절규’하고,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출처 불명의 역사 지식을 늘어놓는 ‘설명충’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짜슥’ ‘X끼’를 연발하는 억센 사투리 덕에 스마트폰 볼륨을 몇 단계는 낮춰야 하지만, 이날 동영상도 게시된 지 반나절 만에 가뿐하게 30만 조회수를 넘겼다.
‘한사랑산악회’는 KBS·SBS 공채 출신인 김민수(30), 이창호(33), 정재형(33), 이용주(35) 4명의 개그맨이 만드는 유튜브 시트콤. 각각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는 산악회장 김영남, 상가번영회 부회장 이택조, 고등학교 물리 교사 정광용, LP바 사장 배용길을 연기한다. 알록달록 등산복에 허리춤까지 올린 바지와 각반, 아무리 애를 써도 어색한 손가락 하트까지 실존하는 어느 산악회를 연상시킨다. 직접 찍은 듯한 화면은 흔들리기 일쑤. 이 영상에 ‘뻥 안 치고 실제 현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나도 산악회 따라 ‘열쩡’ 외치고 긍정인 다 됐음' 같은 애정 어린 댓글 1000~2000개가 순식간에 달린다.
지난 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멤버들은 자신들의 웃음 코드를 ‘공감(共感)’이라고 했다. 김민수(영남)는 “맞아, 맞아. 저런 아저씨 있어 이런 말을 하면서 나오는 웃음”이라고 했다. 캐릭터 한명 한명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핵심. 시끄럽게 떠들며 모든 ‘시옷’을 어설프게 발음하는 경상도 아재 김영남, 흰 난닝구(러닝셔츠) 차림으로 푸푸 거리며 세수하고 귀 뒤까지 요란스럽게 씻어대는 이택조는 그렇게 탄생했다. 자칫 현실에선 ‘비호감’이 될 수 있는 요소도 이곳에선 사랑받는 요소로 역전된다. “6년 차 콜센터 상담원입니다. (전화 응대를 힘들게 하는) 진상 중에 택조, 영남 아재 같은 유형이 많아 선입견이 있었는데, 요즘은 왠지 반갑고, 마음 편해집니다”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청자의 80%는 20~30대. 이창호(택조)는 “‘아버지랑 서먹서먹했는데 울 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돌아가신 아버지 보고 싶다’ 같은 댓글에는 우리도 뭉클해진다”며 “우리가 위 세대를 이해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면 보람도 있다”고 했다.
이들이 아버지·삼촌 세대 중장년만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05학번 is back’ ’08학번 is back’ 등을 통해선 10여 년 전 대학생들의 생활상을 현실로 소환한다. 이들 특유의 ‘디테일’은 콘텐츠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 접히는 폴더폰을 사용하고, 학교 앞 카페에서 쟁가, 블루마블 등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지금의 20대들에게는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와클’ 등 당시에 반짝 유행했던 과자를 소품으로 등장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사랑산악회’를 포함해 일주일에 올리는 영상만 3~4편. 이용주(용길)는 “2~3분짜리 코너밖에 없던 방송사 공개 코미디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라며 “불과 10여 년 전인데도 지금의 20대는 매우 오래전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며 신기해하고 재밌어 한다”고 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 TV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온 국민이 즐겨 보는 집단주의적 엔터테인먼트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각자 자기 세대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가고 있다”면서 “유튜브를 통해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며,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