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미국 동영상 서비스 HBO맥스는 ‘프렌즈: 더 리유니언(Friends: The Reunion)’을 공개했다. 시즌10까지 나온 ‘프렌즈’(1994~2004년)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시트콤. 한국 40~50대들도 즐겨 시청했고, 영어 회화 교재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미국 케이블TV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17년 만에 다시 만나는 에피소드를 HBO가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 1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것.

머리는 은발에 주름도 자글자글하지만, 지금도 반가운 얼굴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시트콤 출연진이 50대가 되어 재회한 ‘프렌즈: 더 리유니언’을 비롯해 SBS ‘불타는 청춘’, tvN스토리 ‘불꽃미남’ 장면들(위에서부터). 현재 중장년 세대가 젊은 시절 즐겼던 드라마·가요 등 각종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이 세월을 훌쩍 넘겨 최근 TV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HBO맥스, SBS, tvN스토리 방송 화면 캡처

이날 방송에선 처음 출연 당시 풋풋한 20대였던 제니퍼 애니스턴(52), 코트니 콕스(56), 리사 쿠드로(57), 맷 르블랑(53), 매슈 페리(51), 데이비드 슈위머(54) 등이 촬영 현장을 다시 찾아 추억을 나눴다. 미국 버라이어티지에 따르면, 공개 첫날 미국 스트리밍 가입 가구의 약 29%가 시청했고, 55.4%가 여성이었으며, 연령대의 절반 이상은 35~54세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시청자가 젊은 시절에 봤던 프로그램을 보며 추억에 빠진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프렌즈’는 당신의 젊고 뜨거웠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도 SBS 예능 ‘불타는 청춘’(이하 불청)이 최성국(50), 김광규(53), 김완선(52), 강수지(54), 신효범(55), 박선영(50) 등을 주축으로 높은 인기를 이어왔다. 지금의 20~30대에겐 낯설지만, 40~50대 시청자라면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이자 향수의 주인공. 모처럼 아는 얼굴의 등장에 채널을 고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50대에서 시청률도 높았다. 본지가 시청률 조사 기관 TNMS에 의뢰해 ‘불청’ 방송 이후 최근까지 같은 기간 SBS 주말 인기 예능 ‘런닝맨’ 시청률과 비교한 결과, 유독 50대 남녀의 ‘불청’ 시청률만 각각 4.1%, 4.8%로 ‘런닝맨’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50대 파워’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조사하는 방송 매체 이용 행태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기준 케이블·위성·IPTV를 가장 많이 이용한 세대가 50대(96.3%)로 나타난 것. 이에 CJ ENM 계열 유료 방송 채널인 tvN스토리는 아예 차인표(54), 손지창(51), 김민종(49), 오지호(45), 신성우(54) 등을 전면에 내세워 이들이 지금까지 간직해온 버킷리스트에 도전한다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 ‘불꽃미남’을 지난달 론칭하기도 했다.

연령별 케이블·IPTV 프로그램 시청 여부

물론 지금의 50대는 단순히 ‘그때를 아십니까’식 정서에 만족하지 않는다. 현재의 중·장년은 자신들의 윗세대와 달리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시기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공통된 경험을 가진 세대.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교체되던 시절 청소년기를 통과했고, 케이블 TV와 인터넷을 처음 접한 세대이자 해외여행 자유화 등으로 문화적으로 훨씬 풍부한 경험을 갖춘 세대다. 중·장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청년들 못지 않은 문화적 욕구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년을 주 시청층으로 지난 4월 시작한 채널 tvN스토리가 ‘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를 슬로건으로 건 것도 이 때문. ‘불꽃미남’을 기획한 박상혁 CP(책임프로듀서)는 “현재 중·장년은 청년기에 결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을 보내지 않았고, 그 누구보다 대중문화를 마음껏 향유했다”면서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들만의 강한 문화적 향유 욕구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등장을 단순한 복고로만 볼 수도 없다. 최근 MBC 인기 예능 ‘놀면 뭐하니?’를 통해 SG워너비의 곡이 소개되면서, 2000년대 초반 발표된 ‘타임리스’ ‘라라라’ ‘내사람’이 10~20대 비율이 높은 멜론 차트 10위권에 올라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대화 대중음악 평론가는 “2000년대 초반 감수성이 현재의 10대, 20대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복고라기보다 세대 간의 문화적 소통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