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대한 비판을 ‘악(惡)’으로 규정한 법이다.” “민주당은 오해라는데, 우리 모두 집단 환각에 빠졌다는 건가.”

양승찬 한국언론학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현안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8.17/연합뉴스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토론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민주당의 법안이 “언론 제도 자체의 근거를 허무는 위험한 법”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언론이 물어줘야 하는 근거로 규정하고 있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범위, ‘허위·조작 보도’ 규정의 모호함 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기사의 의도 따져... 권력 비판 막겠다는 말”

심석태 세명대 교수는 “법안에서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허위·조작 보도’라는 말에는 오보도 포함된다”면서 “이는 언론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또 심 교수는 “이는 결국 언론한테 보도자료만 베끼라는 말인데, 그러면 보도자료로 발표되는 것은 다 사실이냐”면서 “이 법은 고쳐서 될 것도 아니고 (통과되면) 위헌 판정 받고 결국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우리 법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없고, 공인은 명예훼손 그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법안의 규제 대상이 (입법 과정에서) 허위·조작 ‘정보’가 아니라 허위·조작 ‘보도’로 슬며시 바뀌면서, 정작 국민이 가짜 뉴스라고 여기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영상은 포함되지 않고, 오로지 언론중재법이 정한 언론만 포함하게 됐다”면서 “특히 측정이 어려운 ‘의도성’을 법률에 명시했는데, 이는 결국 특정 보도를 막겠다는 것이고, 탐사 보도와 권력에 대한 비판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현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정치 일정에 맞춘 입법 부인 못 해”

민주당이 야당과 언론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밀어붙이는 행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상호 경북대 교수는 “민주당은 (법안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 계속 ‘오해다, 법안을 잘못 읽었다’고 하는데, 여기 오신 분들이 모두 오해한다면 우리가 환각에 빠져 있나, 과연 집단적으로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냐”라고 했다.

김 교수는 “기자가 진실일 것으로 믿고 열심히 취재했으나, 취재가 부족했거나 능력의 한계로 오보가 됐을 때는 현재 법원도 면책을 해주는데, 이를 부인한다면 언론은 더 이상 취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악의나 고의를 갖고 허위·조작 보도를 하는 사람은 사법적으로 다뤄야 할 사기꾼이지, 언론중재법에서 다뤄야 할 ‘언론인’이 아닌데도 이런 규정이 언론중재법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실제 피해의 대부분은 1인 미디어와 유사 미디어 사업자에 의해 발생하는데, (입법 과정에서) 정작 그런 사업자들의 유사 언론 행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정치 일정에 맞춘 입법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용성 한서대 교수는 “여러 비판 속에서도 5배 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명분이 ‘시민의 언론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일 텐데, 정작 법안의 내용을 보면 시민들한테 뭐가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도 “이 법안의 고의중과실 규정에 따르면,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1970년대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미국 국방성 비밀 문서 보도)는 미국의 군사보호법을 위반한 것이고, 최순실의 실체를 파악한 보도도 법률 위반에 해당해 제대로 보도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법률 하에서는 언론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했다고 해서 언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보고 처벌하는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좋은 취지인 만큼 한계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