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협회(IPI·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는 17일(현지 시각) 더불어민주당이 야당과 언론·시민 단체의 반대에도 강행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모호한 규정과 개념적 불확실성 때문에 언론의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에서 처벌 기준이 되는 ‘고의·중과실’ 범위나 처벌 대상인 ‘허위·조작 보도’ 개념이 너무 불분명한 데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 언론이 문제의 소지를 줄이려 알아서 비판 보도를 자제하는 ‘자기 검열’이 심해지고, 이는 결국 언론 자유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모호한 법률 조항이 언론 자유를 위협”
IPI는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 언론인들은 잘못된 보도에 대해 의도적이지 않다(unintentional)는 것을 자기들이 입증하는 책임까지 지게 될 것”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당의 개정안에서 우선 문제가 되는 조항은 ‘고의·중과실의 추정’(30조의3)이다. 이 조항은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이 다른 경우 등 여섯 항을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법률에 ‘고의’가 뭔지 먼저 규정했기 때문에, 소송이 발생하면 고의가 아니라는 것을 언론이 입증해야 한다”면서 “취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까지 지나치게 세세하게 규정해 언론 자유를 옥죄는 독소 조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으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위협을 받거나, 비판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제기됐다. 스콧 그리펀(Scott Griffen) IPI 부국장은 “과도한 징벌적 손해액 때문에 언론 보도에 불만을 품은 특정인이 언론인과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경제적으로 파탄시키겠다’(economic ruin)는 위협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위주의 국가들이나 만드는 ‘가짜뉴스법’, 한국이 만들다니”
IPI는 ‘가짜 뉴스’가 전 세계 독재자들이 비판 언론의 입을 막을 때 사용하는 수단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리펀 부국장은 “전 세계 권위주의 정부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려 ‘가짜뉴스법’(fake news law)을 채택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런 추세를 따르다니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한국기자협회 김동훈 회장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며 “언론 관점에서 진실에 대한 해석은 개인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으며, 실제로는 거짓 정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당이 이번에 마련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법안에 “허위·조작 보도란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중략)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오래전부터 “허위·조작 정보 규제가 어려운 것은 언론의 자유를 축소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법이 도입될 경우, 언론이 진실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취재가 불충분하거나, 취재진 능력의 한계로 오보가 발생했을 때 이마저 처벌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선진국일수록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하려 굳이 별도의 법을 만들기보다 뉴스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해석 능력을 키워주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IPI는 이날 “한국의 경우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에 대한 규정은 민·형사 법제에 이미 마련돼 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전 세계 언론사 편집자들과 미디어 기업 임원 및 주요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한 IPI는 1950년 결성 이래 언론 자유 수호를 위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