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나오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언론의 자유는 기필코 지켜져야 합니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선 ‘범국민 필리버스터’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를 공언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현장. 이날 오전 11시 첫 발언자로 나선 심재철 전(前) 국회부의장은 “언론중재법은 언론장악법이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재갈법”이라면서 “언론의 자유가 무너지면 모든 자유가 무너진다,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온 국민들이 함께 일어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독재법 철폐투쟁을 위한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징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범국민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신창섭 자유언론국민연합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언론독재법 철폐투쟁을 위한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징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범국민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여당은 이날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날 국회 정문 앞 필리버스터를 주최한 ‘언론독재법 철폐투쟁을 위한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는 “25일 국회 본회의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필리버스터가 열린 국회 정문 앞에는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자기 순서에 맞춰 발언을 하기 위해 나선 인사들의 발걸음이 오후까지 이어졌다. 진행을 맡은 이영풍 공투위 집행위원장은 “우리에게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언론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에는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있어서는 안 되고, 그렇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투위는 비(非)민노총 계열 KBS노조를 중심으로 바른사회시민회의, MBC노조, 채널A노조, YTN노조, 중앙일보·JTBC노조 등 시민단체와 언론사 노조 등 20여개 단체가 참여해 구성됐다.

두번째 발언자로 나선 신창섭 자유언론국민연합 집행위원은 “국민의 알 권리는 차단하고 언론사에 천문학적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독재법”이라며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를 송두리째 뽑아내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언론 자유가 없어지면 독재 국가가 된다”며 “북한·중국·러시아 모두 언론 자유가 없는 독재 국가”라고 했다.

세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문아미 KBS노조 감사는 ‘언론자유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문 감사는 “취임 당시 보좌관과 커피를 들고 청와대 뜰을 산책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공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했다”며 “그런데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다. 문 감사는 “언론중재법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했다.

언론독재법 철폐투쟁을 위한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징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범국민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이날 오후 김화랑 전국학생수호연합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학생들도 나섰다. 2019년 서울 관악구 인헌고의 정치 편향 교육에 반대하며 결성된 ‘전국학생수호연합’의 김화랑 대표는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돼 이 자리에 섰다”며 “국민에게 정보를 주는 존재가 언론인데 그런 정보를 정부가 독점한다는 것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효령 청년포럼시작 대표가 바톤을 이어받아 발언을 이어갔다.

정오 무렵 여섯번째 발언자로 나선 이제봉 정교모(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공동대표는 “조국 전 장관 딸 같은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이 법이 통과되면 보도하지 못하게 된다”며 “수사권도 없는 기자들이 어떻게 하나하나 입증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홍콩 시민들이 용감하게 저항한 것처럼 우리들도 용기를 내 일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명준 전국학생수호연합 수석대변인은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발언하는 것 자체가 우울하다”며 “우리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상식이 통하는 나라인데 이런 언론중재법이 상식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규탄했다. 그는 “이번에는 그들 마음대로 법을 통과시킬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이번 악법을 역사는 반드시 기억하고 후대가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임헌조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상임공동대표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이 있고 여기에 더 더해지는 두 기둥이 바로 언론과 시민사회다”며 “이 다섯 개 기둥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국가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데 최근 언론중재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독재법을 만들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고 규탄했다. 그는 “과거 영국은 다수결 민주주의가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가 최근에는 소수·국민의 의견을 들어 법안을 만들고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나라의 민주당은 많은 의석수를 가지고 있다며 야당과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단독 법안 상정 같은 독재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을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국민의힘 의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을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어 이영풍 공투위 집행위원장은 “대한민국에는 보수 신문도 있고 진보 신문도 있다”며 “우리는 보수도 말하고 진보도 말하는 세상을 원하는데 지금은 언론의 자유를 때려잡으려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는 공산당 선전 매체만이 있을 뿐”이라며 “특정 신문사를 폐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말도 안 되는 주장이고 우리는 진보·보수가 모두 발언하며 집권층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사회를 원한다”고 했다.

다음 발언자로 나선 손성호 KBS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는 것도 언론·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또 “터무니없는 사실은 이 법 도입에 앞장 선 사람이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처음 주장한 무소속 이상직 의원은 ‘500억원 횡령·배임 의혹’ 보도에 ‘가짜 뉴스’라고 반발했지만 사실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 5월 결국 구속 기소됐다.

열한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박소영 행동하는자유시민 대표는 “현 정권의 부동산 실정으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고통 받는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국민의 입까지 틀어막으려 하냐”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 귀를 막고 알 권리를 침해하려는 행동이 2021년에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고 참담하다”고 했다.

“그동안 집회를 하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낯으로 이 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것인가” 열두번째 발언자로 나선 유승수 변호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주도하고 있는 여당 의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들이 지금까지 주장한 민주화는 허상·거짓이고 그들은 민주화팔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라고 했다. 또 “국회의원들이 양심이 있고 그들이 해야 하는 직무가 있다면 헌법에 부합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법률을 내야 한다”고 했다.

열세번째 연사로 나선 오정환 MBC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며 “당시 정권은 의문사로 덮으려 했는데 만약 이번에 통과시키려는 개정안이 있었더라면 기자들이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겠느냐”라고 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조맹기 서강대 전 언론대학원 교수는 “나는 강단에 서던 사람인데 이번 개정안을 두고 걱정이 앞서 지식인으로서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해 나왔다”며 “언론의 자유는 다른 자유에 앞서는 자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조 전 교수는 “언론중재법은 개정이 아니라 폐지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24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서양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등 7개 언론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 전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촉구 언론인 서명지를 전달받고 있다./뉴시스

이순임 방송주권자행동 대표는 “만약 2억5000만원의 징벌적 벌금이 매겨진다면 어떤 언론사가 정부와 권력을 비판하는 보도를 쉽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언론중재법은 피해액 하한선을 매출액의 10000분의 1로, 상한선을 매출액의 1000분의 1로 정해 놓았다. 언론사 매출액이 5000억원이라면 어떤 피해라도 배상액은 5000만원이 된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5배인 점은 감안하면 배상액은 2억5000만원이 되는 것이다. 이어 이 대표는 “이번 개정안은 단순히 언론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제”라며 “언론인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나서 막아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대표 변호사는 “이번 언론중재법에는 위헌적 요소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고의·중과실 사유를 예시 또는 열거해 추정하는 규정”이라고 했다. 민사법 원칙상 입증책임은 손해를 주장하는 쪽이 진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언론사가 고의·중과실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전례가 없는 반헌법적인 법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열일곱번째 연사로 나선 우광택 KBS 기자는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이 했던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말이다. 우 기자는 이어 “언론은 공기(空氣)와 같아 평소에는 공기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단 5분만이라도 공기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죽고 만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총선 참패에서부터 오늘의 이런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다”면서도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이어 열아홉번째 연사로 나선 박인환 자유언론국민연합 공동대표는 “앞서 훌륭한 연사들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사실 언론인·교수·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는 1인 시위를 하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면서도 “오늘 시민들이 필리버스터를 하니 야당 의원들 역시 필리버스터 방법을 써서라도 내일 언론악법 통과를 막아냈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