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북에 피격된 천안함의 침몰 원인으로 ‘잠수함 충돌설(說)’을 퍼뜨린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가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북한군 개입설 등 5·18민주화운동 왜곡 내용을 담은 게시물에 대해선 ‘허위 조작 정보’라며 삭제 또는 접속 차단 결정을 내렸던 방심위가 천안함 관련 허위 정보에 대해선 “그냥 둬도 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방심위가 이중적인 잣대를 가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공식 입장과 상반된 방심위 입장
방심위 통신심의소위는 지난달 28일 천안함 폭침 관련 유튜브 8건을 심의 안건으로 다뤘다. ▶천안함은 좌초 후 잠수함 충돌로 반파됐다 ▶함정 절단면에 불탄 흔적이 없어 폭발에 의한 침몰이 아니다 ▶고(故) 한주호 준위는 이스라엘 잠수함을 구조하려다 사망했다 ▶미국에서 잠수함 전문가가 사고 조사에 참여했다 등의 내용으로, 방심위 사무처에 따르면 11년째 음모론을 제기해온 신상철 전(前)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 등장하는 친북(親北) 성향 유튜브 채널의 게시물이다. 국방부는 이들 콘텐츠가 “사회 질서를 위반했다”며 삭제 또는 접속 차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날 방심위 회의는 통신소위 위원 5명 중 다수(多數)인 여권 추천 위원 3명이 ‘해당 없음’ 의견을 제시하면서, 일찌감치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난 4일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다수인 여권 추천 위원들은 ‘음모론’을 인정하면서도 삭제할 만한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광복(방심위 부위원장) 위원은 “이미 어떤 쪽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떠나 ‘논란이 있는 사안’으로 다 알려진 사안인데 이것을 없앨 만한 글인지 석연하게 딱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법원도 명예훼손에 대해 무죄 판단을 하지 않았느냐”며 문제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출신인 김유진 위원은 “법원 판결문 해석을 떠나 그동안 우리가 음모론 수준 정보에 대해선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려왔다”고 했다. 김 위원은 5·18 음모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삭제했던 것과 달리, “천안함은 군의 공무 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고 음모론이지만 비판적 주장을 하는 것이어서 무고한 시민을 북한군으로 몰아가는 5·18 정보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가 있는데도, 잠수함 충돌설류의 음모론을 용인해주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옥시찬 위원은 “미완의 사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표명하는 것이라면, 일단 표현의 자유의 영역 안에 두고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빨리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우리 사회가 분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방심위가 천안함 음모론에 면죄부 준 셈”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로 절단되어 침몰됐다”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방송·통신 콘텐츠의 ‘내용’을 심의하는 기구인 방심위에선 정부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날 방심위 결정에 대해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도 상반되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음모론에 방심위가 면죄부를 줬다”면서 “정파적으로 배분된 방심위의 인적(人的) 구성으로 인해 상식적 판단조차 내리지 못한 사례”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3월 국립대전현충원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천안함은 누구의 소행이냐”는 유가족 질문에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답했다. 지난 4월에는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정 어뢰 공격으로 인한 폭발로 침몰한 것인지, 좌초 후 충돌에 의한 것인지 재조사해달라”는 신상철씨 진정을 받아들여 재조사를 결정했다가, 천안함 유가족을 비롯한 여론의 반발에 휩싸여 재조사 결정을 번복하고 이인람 위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 황성욱 상임위원 등 야권 추천 위원들은 “명예훼손 소송에서 2심까지 무죄가 나온 것은 맞지만 이는 비방 목적 등 명예훼손 부분에 대한 무죄이며, 담고 있는 주장이 허위 사실이라는 점은 법원도 명확하게 인정했다”며 삭제 또는 접속 차단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