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는 1일 발표한 정부 광고 제도 개편안을 통해 언론 매체의 영향력뿐 아니라 언론사들이 이른바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도 반영해 광고를 집행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새로운 정부광고 지표 마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 광고 집행을 위한 새로운 복수지표인 핵심·기본지표를 확정 발표했다/뉴시스

하지만 새 지표들의 효용성,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항목별 반영 비율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공공기관·공기업 등에서 집행하는 연간 1조893억원(2020년 기준) 규모의 정부 광고를 집행 기관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정부 광고의 효율성과 공익성을 향상시켰다”고 했지만, 정부 홍보의 효과를 높이기보다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언론 줄 세우기’ 우려

정부든 기업이든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는 매체에 광고하는 것이 상식인데, 정부는 이와 무관한 광고 지표를 내놓았다. 정부 개편안은 광고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①열독률(인쇄 매체) 외에, 신뢰성(사회적 책임)을 측정하기 위한 ②언론중재위 직권조정 및 시정권고 건수 ③매체자율심의기구 참여 여부 ④자율심의기구에서 받은 주의·경고 건수 ⑤편집·독자위원회 설치·운영 여부 등을 지표로 삼기로 했다.

열독률 외에 나머지 지표들은 언론사의 개별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이른바 정성적 지표여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부 광고를 위해 언론에 대한 질적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얼마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그동안 기계적으로 나눠주던 광고 집행을 보다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하게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항목별 반영 비율도 개별 광고주인 정부 부처나 기관, 공기업들에 맡겼다. 광고의 성격에 따라 임의로 반영 비율을 정하도록 한 것이다. 열독률 이외에 다른 기준들의 반영 비율을 높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문체부 관계자는 “광고 성격에 따라 광고 집행 기관이나 단체가 열독률 반영 비율을 낮추고, 사회적 책임 지표를 높게 반영할 수 있다”면서 “극단적으로 열독률은 0% 반영하고, 나머지 사회적 지표를 100%로 반영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경우 열독률이 4~5등급으로 낮은 매체에 광고를 몰아줄 수도 있다. 특정 공기업이 열독률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구간별로 최대 1~3점 차이만 나는 언론 중재 건수나 편집위원회 설치 여부 등의 지표만 반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도 명확”

개편된 정부 광고 지표에서 열독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과거에도 ABC협회의 부수공사 자료는 참조용으로만 활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제도 개선이 ABC협회 부수 자료의 신뢰성 문제에서 시작됐음을 감안하면, 이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고 발표하고서, 정작 그 자료를 활용할지 말지는 그때그때 해당 기관의 임의적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정확한 광고 지표를 만들겠다면서 홍보 효과와 관계없는 지표들을 넣어서 입맛에 맞는 매체를 지원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사실 그동안 집행된 정부 광고가 ABC협회의 부수 조사 자료나 열독률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었다. 2020년 실시된 ABC협회의 전년도 유료 부수 인증에서 조선일보는 국내 일간지 가운데 가장 많은 116만2953부를 인증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로부터 광고를 가장 많이 수주한 신문은 동아일보였고, 유료 부수 대비 정부 광고 수주액을 계산한 신문 1부당 정부 광고 집행액은 한겨레신문이 조선일보의 4배가 넘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정부 광고의 성격이 정부 정책 홍보뿐만 아니라 사실상 언론을 지원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가 (특정 언론을)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강할수록, 언론에 대한 통제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문체부 산하의 언론진흥재단이 10%의 수수료를 떼면서 정부 광고를 독점 대행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 교수는 “정부 산하 독점 기구를 통해 통제하는 시스템 대신 민간 광고대행사에 정부 광고를 개방하기만 해도 효율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