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천안함 잠수함 충돌설(說) 등을 주장한 유튜브 허위 게시물에 대해 9일 ‘(게시자) 의견 진술 없는 삭제 또는 접속 차단’ 결정을 내렸다. 지난 10월 28일 같은 내용의 유튜브 게시물을 심의하고 ‘그대로 둬도 된다’(해당없음)고 했던 결정을 한달 여 만에 뒤집은 것이다.

방심위 간판. /뉴시스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이날 오전 천안함재단과 유가족 등이 새롭게 심의 요청한 ‘천안함 잠수함 충돌설’ 주장 유튜브 영상 8건에 대해 5명 위원 중 4명 다수(多數) 의견으로 ‘의견진술 없는 시정 요구’를 결정했다. 시정 요구란 이용자들이 해당 게시물을 볼 수 없도록 아예 삭제하거나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날 심의는 지난 10월 내려진 방심위 결정에 반발한 천안함재단과 유가족들이 같은 게시물에 대해 다시 심의를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이번 요청에선 국방부가 문제 삼았던 ‘사회질서 위반’ 사유 외에 피해 장병과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 사유가 추가됐다. 이들 게시물은 ▶천안함은 좌초 후 잠수함 충돌로 반파됐다 ▶함정 절단면에 불탄 흔적이 없어 폭발에 의한 침몰이 아니다 ▶고(故) 한주호 준위는 이스라엘 잠수함을 구조하려다 사망했다 ▶미국에서 잠수함 전문가가 사고 조사에 참여했다 등의 내용으로, 천안함 음모론을 제기해온 신상철 전(前)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 친북(親北) 성향 유튜브 채널에 나와 발언한 내용들이다.

지난 10월 국방부는 ‘북한 어뢰 피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정부 공식 조사 결과에 정면 배치되는 이들 콘텐츠가 “사회 질서 위반 소지가 크다”며 삭제 또는 접속 차단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방심위 통신소위에선 위원 5명 중 다수인 여권 추천 인사로 분류되는 이광복·옥시찬·김유진 위원 3명이 ‘해당 없음’ 의견을 제시하면서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본지 2021년11월8일자 A6면>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이들 위원 중 이광복 옥시찬 위원 두 명이 ‘의견진술 없는 시정요구’ 의견을 내면서 지난 번 결정과 정반대되는 결정이 나왔다. 같은 사안을 한 번 더 심의하는 것은 괜찮을까. 방심위 사무처 관계자는 “심의 대상이 된 게시물은 동일하지만, 민원을 제기한 주체가 다르고, 지난 번에 어떤 제재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권리 침해 내용도 명예훼손이 추가되어 새로 안건으로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개별 위원들의 의견 표명도 이뤄졌다. 김우석 위원은 “지난번 결정으로 인해 천안함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받은 가슴에 우리 위원회가 대못을 박은 것 아닌가 송구한 마음”이라며 “새로 진수한 천안함에 다시 어뢰를 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위원은 특히 “지난 번 회의는 사회적 질서 위반만 갖고 논의했지만 결과적으로 후폭풍이 거세졌고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까지 불필요한 발언을 요구하는 일이 생겼다”며 “이번에는 생존 장병과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 사유가 새롭게 제기된 만큼 실추된 장병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사회적 질서를 바로잡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성욱 위원(통신심의소위 위원장)은 “이번 사안은 방심위가 사회적 혼란에 대해 책임을 갖고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며 “우리 심의로 사회적 혼란 야기되면 안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 위원은 방심위 결정에 대한 언론 보도가 오히려 큰 파장을 일으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광복 위원(방심위 부위원장)은 “개인적으로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 없지만, 10년 지난 사건에 음모론 의견을 제기했다고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당시 (국방부가 제기한) 민원이 심의위 제재 대상이 아니라 보고 ‘해당없음’ 의견을 낸 뿐인데, 이것을 일부에서 문제없음으로 해석하면서 음모론적 주장에 면죄부를 줬다는 식의 여론몰이를 해 오히려 사회혼란 야기했다는 것이 제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어서 “생존 장병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흠집을 내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장병 유가족에게 심심하게 유감을 표한다”면서 “천안함 재단과 유가족이 새로 심의를 요청했기에 적용 조항도 다르고 새로운 민원으로 다룰 것으로 판단해 ‘의견진술 없는 시정요구’를 제 의견으로 제안한다”고 말했다.

옥시찬 위원은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의 부재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면서도 “우리가 판단을 잘못하면 헌법소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한 심의는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는 의견을 피력한 뒤 ‘의견진술 없는 시정요구’를 자신의 의견으로 개진했다. 관련 사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심의를 중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김유진 위원은 “다수 의견에 따라 시정조치 요구가 결정된다면 그에 앞서 의견진술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요구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보통 시정요구 결정 전 게시자를 불러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치지만, 국가 안보 등 시급한 사유가 있을 때 의견진술 없는 시정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최원일 전(前) 천안함 함장(천안함생존자전우회 회장·예비역 해군대령)이 전우이자 천안함 생존장병인 전준영씨와 함께 방청석에 나와 안건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참관했다. 최 전 함장은 과거 방심위의 ‘천안함 음모론 문제없음’ 결정에 반발해 지난 달 9일 열린 대구급 신형호위함 ‘천안함’ 진수식에 불참하는 등 음모론을 방조하는 것에 대해 반발해왔다. 최 전 함장은 “늦게나마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