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 2위에 오른 김동현/ 장련성 기자

지난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간 시각. 약 3개월간 달려온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의 최종 ‘국민가수’로 ‘박창근’이 호명되는 순간, 바로 시선이 흘러간 건 ‘창근 형님’을 양팔로 한껏 끌어안는 김동현이었다. 깡충깡충 발을 구르며 격한 축하를 건네더니 누구보다도 환한 얼굴로 이내 그는 외친다. “박창근!” “박창근!” 그의 선창에 따라 톱7에 오른 나머지 멤버들도 박창근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한다.

10월 7일 첫 무대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무대에 그의 진심을 담은 목소리가 발자취처럼 남았지만, 이날 이 한 장면이야말로 ‘김동현’이란 사람의 ‘인간됨’을 보여주기 충분하지 않을까. 근육을 아끼지 않고 말 그대로 ‘격한’ 웃음으로 포옹하는 김동현의 아이 같은 웃음 속엔 사람들이 가끔 잊고 지내는 ‘순수’가 튀어나왔다. 초승달 모양으로 시원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는 그 자체가 위로였다. 가식은 김동현이란 사람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 같았다.

1위 박창근을 꽉 안은 김동현/TV조선

그가 응원한 ‘창근 형님’이 왕관을 쓰고, 황금 트로피를 안고 상금을 받는 동안, ‘그래도 내 마음속 1위는 김동현’이라고 외친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날 최종전 ‘인생곡’으로 허각의 ‘나를 사랑했던 사람아’를 선택한 그는 마스터점수 1097점을 받았다. 1100점 만점에서 단 3점 모자란 점수. 마스터 점수로만 보면 1위다.

첫 방송에서 부활의 ‘비밀’을 택해 올하트로 대중의 마음까지 움직였던 그가 최종전에선 마스터들로부터 ‘최고’라고 다시 한번 인정받은 것이다. 매끄러운 미성과 기교, 무엇보다 노래에 대한 진심을 담은 ‘절창(絕唱)’은 ‘가수 김동현’의 이름을 대중들의 머릿속에 새기기 충분했다.

최종 2위에 오른 김동현/TV조선

이날 만난 그는 무대가 주는 아우라를 넘어서는 ‘어른’ 같았다. 1위라는 자리, 3억원이라는 상금,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1등이 됐다면 미안했을 것”이라고 겸손해한다. 김동현은 “지금의 위치도 과분하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갈고 닦으라는 신호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저에게 점수를 주시고 투표해주신 많은 분께 정말 정말 감사드리고 일일이 인사를 드려도 모자라죠. 하지만 제가 만약 1등이 됐다면, 지금 잠깐 쏟아낸 것 덕분에 정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내공이 아직 부족한데, 자만하지 말고 더 잘하라는 여러분의 격려라고 받아들이고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친구·선배·어머니의 삼고초려(?)로 지원

김동현과의 인터뷰에 앞서 그려놓은 일부의 이미지가 있었다. 장난기 없이는 그냥 하루를 넘기지 않을 듯했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가끔은 아찔하고, 가끔은 어디서 고삐를 잡아야 할지 아슬아슬하게 웃음을 터뜨릴 것을 기대했다. 유쾌함 ‘한도 초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터뷰 장에 김동현표 개그로 가득 찰 듯싶었다. TV 속 ‘비하인드’ 스토리나 ‘네이버 나우’ 등에서 비치는 모습에서나, 유튜브 ‘내일은 국민가수’ 공식계정 톱 7 라이브 방송 진행을 하는 장면 등을 통해, 또 과거 각종 온라인 자료 등을 통해 ‘준비된 예능인’의 끼를 차곡차곡 선보였던 그 아닌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면서 토크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스포츠를 접목한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김동현 / 장련성 기자

매끄러운 미성(美聲)을 무기로 그만의 기교로 음표를 타고 내리듯, 인터뷰 분위기를 널뛰듯 휘어잡지 않을까 했다. 특유의 넉살에서 비롯되는 친근감과 코믹과 애절을 넘나드는 그의 풍부한 표정은 김동현의 매력 중 매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고, 또 진지했다. “이까지 와서”라며 부산 사투리를 적당히 섞어 쓰는 데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김동현의 말 맛을 더해주는 동안, 그는 “용기가 생겼다”며 쑥스럽게 웃는다. 힘 있고 고운 미성으로 시청자를 ‘홀린’ 그의 한마디. “지인짜 국민가수에 잘 나왔다고 느낀 게,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몸소 깨달았다는 것이거든요.”

그는 “국민가수는 나올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내, 실력 부족하니 갈고 닦아야지 생각했거든요. 제가 유명한 오디션은, 그냥 여러분이 다 아는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그런 유명한 오디션은 다 도전해 봤어요. 6~7번 정도? 다른 오디션 말고도요. 근데 예선도 통과 못하더라고요. TV요? 당연히 얼굴 한 번 안나왔죠. 실력이 부족하니 그러지 않았을까요?”

어린 시절 그는 ‘노래 좀 한다’는 친구 중에서도 튀는 이였다. 예체능에서는 실력 발휘를 단단히 하는 그였다. 일단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하면 모두 “동현이 노래한다”며 그의 주변에 모였다. 중학교 때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니 가수해라.”

“니 가수해라”라는 친구의 진심은 십여년이 지나 “니, 국민가수 나가봐라”로 바뀌었다. “솔직히, TV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다 보니 ‘나는 아니구나’ ‘내가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오를 때까지 최소한 서른이 될 때까지 목표로 삼고, 인생철학도 키우면서 ‘갈고 닦아야지’ 했습니다.”

처음엔 부산에서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의 제안이었다. ‘내일은 국민가수’ 오디션 공고가 난 뒤 같이 한번 응모해 보자는 것이었다. “내는 아니다. 아직 부족하데이. 안 나간다.” 김동현은 거절했다. 친한 형에게 또 다시 연락이 왔다. 소셜 미디어 메시지에 국민가수 포스터를 보내고는 “나가보라”고 당부한 거다. 그의 실력을 알고 그를 아꼈기에 설득한 것이다. “제가 답을 못드렸어요. 그때까지도 저는 아직 갈고 닦는 과정이라 생각했거든요.”

그의 마음이 드디어 바뀐 건 어머니의 메시지를 받고.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국민가수 포스터 한 장이었다. 아들에게 부담될까, 아들이 괜히 마음쓸까 그냥 알고도 모른 척, 그냥 지나가는 일상인 척,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의 함축적인 사랑을 포스터 한장에 담아 보낸 것이다.

“어머니랑 진짜 친하긴 해도 평소에 그런 거 보내신 적이 없거든요. 노래하겠다는 것도 처음엔 반대하셨기 때문에 제 앞날은 제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믿고 맡기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아무 말씀 없는 포스터 한장이 그렇게 울림이 큰 거에요. 제가 그동안 너무 마음을 닫아놓고 산 건 아닌가, 나만 나를 판단하고 있었나, 나를 판단해주실 분들이 많은데 왜 밖으로 깨치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하고 깨닫게 됐죠. 일단 부딪혀보자 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숯불 총각’ 별명, 처음엔 싫었어요!”

국민가수 김동현/TV조선

그를 국민 마음에 ‘안착’ 시킨 건 첫 등장에서 보여준 빼어난 미성뿐만 아니다. ‘숯불 총각’이란 귀에 쏙 들어오는 애칭. 숯불 닭갈비 집에서 하루 200인분의 숯불을 피우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 소개였다. 숯가루 마시며 듣기만 해도 텁텁할 것 같은 그에게 누구보다도 곱고 맑은 목소리가 터저 나오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숯가루 대신 돈방석에 앉게 해줄게” “숯불 대신 황금 트로피 들자” 같은 팬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첫날 마스터 예심 1라운드에 등장한 이들 중 ‘숯불 총각’ 김동현을 비롯해 ‘반바지맨’ 김희석, ‘집시청년’ 이솔로몬, ‘23년 포크 외길’ 박창근 등 ‘톱 10′에 오른 막강한 실력파들이 대거 포진했지만 그중에서도 ‘숯불 총각’의 인상은 이날의 ‘엔딩요정’이었던 박창근 못지않게 강렬했다.

그런데 그는 막상 “솔직히 그 별명 (제작진에) 안 하고 싶다 했어요”라고 말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보다 보면 닉네임이 따라붙는 건 팬들 기억에도 쉽게 남기도 하고 장점이 되는 일도 많은데, 왠지 그만큼 조심스러워 지는 거에요.” 그는 ‘조심스럽다’는 단어를 쓴 만큼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이런 말 써도 되나요?”라면서 “’사연팔이’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오디션에 각종 서사가 붙은 건 감동을 배가시키기도 하지만, 가끔 억지 감동을 자아낸다는 일부의 비난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쓴 것이다.

“아직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은데, 별명을 등에 업고 실력 대신 인상을 남기려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요. 그리고 노래만 바라보고 더 어려운 일도 마다치 않으며 달려온 사람들이 수두룩했거든요. 먹고 사는 문제가 분명 끼어 있으니, 일하는 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즐거운 추억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근데 그걸 내세우자니 고민이 많을 수밖에요.” 하지만 또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었다. 숯불을 달구며 시간 시간 마다 노래를 불렀던 자신도 ‘김동현’이었다. 결국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잠깐 고민하다 ‘숯불 총각, 저 하겠습니다’ 했지요. 근데, 그 방송이 나가고 그날 밤부터 정말 휴대폰이 터질 듯이 연락이 많이 오는 거에요. 또 댓글에서 그렇게 많은 분이 ‘숯불 총각’을 말씀해주실 줄 몰랐어요. 제 이름은 모르셔도 ‘숯불 총각’은 다들 한 마디씩 해주시더라고요. 제작진이 옳으셨던 거죠.”

그렇게 대중에게 각인된 ‘숯불 총각’은 역시 마스터 예심에서 ‘집시여인’으로 올하트를 받은 ‘집시몬’ 이솔로몬과 경연이 지나면서 ‘숯솔’ 케미를 선사한다. “지내다 보면 끌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고, 다가가 이야기해보고 싶고, 그게 로몬이형이었어요. 처음엔 장난처럼 ‘형 집에 좀 가보자’고 다갔어요. ‘응, 그래 잘 들어가고’라고 철벽을 치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 우리 집 갈래’라며 씨익 웃어주는 거에요. 사람들끼리 대화하다 보면 대화선이라는 게 느껴지잖아요. 근데 몬이형이랑은 진짜 많은 걸 공감하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는데 정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이솔로몬과 김동현/TV조선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운동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야구, 축구, 농구 다 좋아해요. 스트레스 쌓이면 농구 하면서 풀고. 로몬이형도 축구되게 잘하거든요. 예능 프로그램은 시키주시면 다 잘할 거 같은데 진짜, 로몬이형이랑 운동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같이 나가보고 싶고요…,”

김동현의 말에, “저한테는 이솔로몬씨가 ‘나는 축구 열등생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더니 “그거는 로몬이 형이 진짜 잘할 때 하는 말이에요”라며 웃는다. “로몬이 형은요, 진짜 잘하는 건 정말 못한다고 엄청 겸손해하고, 조금 잘하는 건 되게 잘한다 말해요. 하하.” 이미 둘은 10년 지기 친구가 된 듯했다.

◇20대 초반, 나는 실패의 쳇바퀴를 돌았다

김동현은 박창근과 최종 2인으로 남았을 당시 심경을 묻는 김성주 MC에게 이렇게 말했다. “창근 형님이 1등 했으면 좋겠습니다. 격이 다른 무대를 항상 보여주셨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형님이 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동현과 박창근/TV조선

평소 친근하게 ‘창근 형님’이라 부른다지만 기자 앞에선 깍듯이 ‘창근 선생님’이라고 올려 말했다. “1라운드에서 창근 선생님의 50년 인생이 담긴 관록의 무대를 보니,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게 돼요. 많은 대중 분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실 거에요. 창근 쌤이라는 분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에너지, 가사 전달력, 그리고 특히 무대에서 전달하시려는 메시지,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배움이죠. 진짜 응원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드렸어요.” 김동현의 한 마디 한 마디 속에서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수의 길’을 읽을 수 있었다.

김동현은 부산 동래고등학교 재학 시절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품고 밴드 활동을 했다. 교직에 계신 아버지는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 잡길 원했다. 그를 전적으로 응원하던 어머니도 아들이 평범한 직업을 갖길 원했다. 김동현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어했다.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며 보컬 실력을 쌓았다. 대학 입시에도 도전했다. 친구들 모두 그에게 ‘최고’라고 했는데도, 어느 대학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겪은 첫 번 째 좌절.

그렇다고 가수의 꿈을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그에게 노래가 우선이었지 대학이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TV 오디션도 도전했다. 예선 탈락. ‘왜 나는 안되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능에도 도전하고픈 마음에 차라리 개그맨 시험을 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재능엔 그쪽이 더 맞는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었다. 그의 주변엔 항상 웃음이 있고, 박수가 있고, 그를 믿고 따르는 친구가 있었지만 ‘시험’만 그를 비켜갔다. 운이 없는 건가, 실력이 안되는 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실패자인가….’

그럴 즈음 몇몇 소속사 오디션도 보게 됐다. 연습생 친구의 소개로 오디션을 보게 됐고 드디어 합격! 그의 인생에 합!격! 이란 두 글자가 찬란하게 비친 것이다. 그것도 그 유명한 ‘키이스트’였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당시 이끌던 배우 전문 회사로 그는 당시 키이스트 음반 사업부에 속해 연습생으로 출발했다.

“‘남자 다비치’를 키운다는 목표로 연습하게 됐죠. 2년 좀 안 되게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는 방송에선 “연습생에서 잘렸다”고 표현했다. 사업부 분사 등을 겪고 매니저 분들이 회사를 새로 차리는 등 그 과정에서 자신도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랑 정말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거든요. 어머니는 제가 뭔가를 해도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길 바라지 않으셨어요. 아마 당신도 원하시는 게 있으셨겠죠. 하지만 항상 ‘건강하게만 잘 커주는게 효도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스무살 때부터 떨어져 지냈으니,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건강’에서 시작해 ‘건강’으로 끝났거든요.

그래서인지, 수많은 실패에도 두려움이 없었어요. 건강만 하면 되니까. 시련이 와도 분명 전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 극복해 낼 거라 생각했거든요. 왜냐, 전 어딜가나 언제나 항상 건강했으니까요. 어쩌면 가장 단순한 말씀 같지만, 모든 걸 포용하는 어머니의 넓은 품이 제게 강한 정신력을 심어주신 것 같아요.”

2위 자리에 오른 김동현 / 장련성 기자

부산에서 보컬 학원 친구들과 어쿠스틱 락 밴드 ‘아띠밴드’를 결성해 그들의 노래를 찾는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광안리, 서면, 영도, 부산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리 버스킹을 했다. ‘노래가 좋아서’ 모인 실력파 밴드였기에 부산 내에서 금방 이름이 알려졌다. 그들을 찾는 행사·단체들이 많아졌다. 2019년 유튜브 ‘창현 거리노래방’에서 왕중왕전까지 올라가면서 ‘거리의 무서운 실력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노래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눈물 없는 내게 눈물을 안긴 국민가수…”정말 나오길 잘했다”

김동현에게 ‘국민가수’ 마스터 예심 통과는 극적인 행복이었다. 그가 노래한 부활의 ‘비밀’은 ‘숯불 총각’ 김동현 특유의 미성의 ‘비밀’이 무언지 궁금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무대였다. 누적된 실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었고, 상상도 못했기에 꿈같았다”고 말했다.

“정말 그 첫 번째 무대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어요. 이걸 내가 만약 해낼 수 있다면,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오디션을 계속 이어갈 명분을 스스로 쌓아갈 수 있겠구나. 내가 국민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노래를 통해 들려드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1차전 ‘국민가수전’에선 상경부 팀원들과 꾸린 아이유의 ‘러브 포엠’으로 다시 한번 2연타석 홈런을 쳤다. ‘극강의 하모니’라는 평가. 김동현, 손진욱, 이솔로몬, 조연호까지 이들 모두 ‘톱 10′에 올랐으니, ‘미래의 국민가수’ 전초전 무대이기도 했다.

그뿐인가. 재간둥이 김동현의 유머러스함이 눈에 띄는 시기이도 했다. 김유하·임지민 등 초등생과 아이유 노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거나 ‘로몬이형~’이라며 콧소리를 담아 상경부 형·동생을 챙기는 무대 뒷모습은 무거워질법 한 경연에 웃음이란 조미료를 스륵스륵 뿌리고 다녔다.

21일 방송된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본선 1라운드 팀 미션에서 ‘상경부’로 출전한 조연호(왼쪽부터), 김동현, 손진욱, 이솔로몬이 아이유의 ‘러브 포엠’을 재해석해 부르고 있다. /TV조선

먼저 다가가고, 사람에 대한 정이 깊어서였을까. 그는 ‘숯 속의 진주들’ 팀을 꾸릴 때가 가장 힘들었었다고 말했다. 팀원과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김동현은 신용재의 ‘가수가 된 이유’로 데스매치 1위를 기록하며 ‘국민콘서트’ 팀미션을 치를 5명을 먼저 뽑을 우선권을 얻게 됐다.

숯 속의 진주들/tv조선

‘대장’ 김동현을 비롯해 김유하, 박광선, 이솔로몬, 임지수로 구성된 팀이었다. 코로나로 굳게 닫혔던 객석의 문을 2년여 만에 개방해, 관객을 초청한 녹화 현장에선 경연이 아닌 정말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팀원들이 정말 좋았기에 떠나보낼 때 가장 힘들었어요. ‘이게 다 내 책임’이라는 속상한 마음이었죠. 제가 진짜 눈물이 없거든요. 그날은 함께 다 같이 올라가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계속 자책하게 되고,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고, 정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의 ‘인생곡’인 허각의 ‘나를 사랑했던 사람아’에도 그의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 과거의 이별뿐만 아니라 이번 ‘숯 속의 진주들’에서 떠나보낸 팀원들을 비롯해 국민가수를 통해 함께 경연을 치렀던 출연진들, 그동안 정을 줬던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고 했다.

가수 신용재의 노래를 두번 연속 선택하며 ‘선곡 실패’라는 평가도 있었다. “제가 어찌 보면 힘든 걸 수 있는 걸, 제 식대로 풀어내는 걸 좋아해요. 부정적으로 듣지 않는 거죠. 합리화의 달인이라면 달인이고. 뭐라지요. 정신 승리? 하하. 제가 그 말씀 발판 삼아 발전할 수 있게 되니까요. 되돌아보니까, 그게 제가 전달하고픈 메시지였다고 해도 오디션이잖아요. 곡배치를 그렇게 한 건 제가 마스터분들이나, 시청자분들이었다면 ‘쟤는 다른 건 없나?’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국민가수 2위에 오른 김동 / 장련성 기자

그가 말하는 최고의 순간은 1대1 라이벌전 ‘말리꽃’. “마스터님들께 과분한 칭찬을 들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평가해 주시니 용기가 많이 생겼어요. 그 말씀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죠. 진짜 여기 나오기 잘한 거 같아요.”

말리꽃은 말리 재스민의 일종으로 ‘사랑의 맹세’를 뜻한다고 한다. 샴푸향 때문인지, 아니면 촬영날에만 한다는 트리트먼트 때문인지, 김동현의 찰랑찰랑 고운 머릿결 사이로 은은한 재스민 향이 나는 듯했다. 평생 노래를 하겠다는 ‘사랑의 맹세’의 향이라는 문장으로 끝나야 할 것 같지만, 김동현 말맛 스타일에 따르자면, 이렇게 끝내야 할 것 같다. 샴푸나 헤어에센스 광고에 등장해 윤기 넘치는 백만불짜리 머리카락을 휘날린 뒤 특유의 미성으로 말한다. “머릿결이 끝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