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죠. 그 강(强)하고 유별나고 입담 좋은 패널들과 대결해왔으니…, 그래도 ‘강적들’ 덕분에 지금의 제 캐릭터가 만들어졌죠.”

김성경은 2013년 10월 TV조선 시사토크 프로그램 ‘강적들’ 1회부터 출연해 29일 420회까지 햇수로 장장 10년, 기간으로는 만 8년여 패널 또는 진행자로 출연해온 ‘간판 얼굴’이다. 2018년 이후 단독 진행자를 맡으면서 5~6%대를 넘나드는 시청률과 함께 대선 등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날카로운 분석과 견해를 제시하고,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성경은 2013년부터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하고 있다. 유머를 곁들인 부드러운 진행에 아무리 강한 패널도 무장해제된다. /고운호 기자

그는 “‘강적들’은 제게 많은 것을 주기도 했지만, 가져가기도 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방송인으로서 제가 내세울 수 있는 대표 프로그램이 되어 주었고 ‘김성경’이라는 캐릭터를 알린 프로그램”이라는 것. 앗아간 것은 뭘까. “처음의 부드럽고 단아한 이미지는 다 잃었죠, 뭐 하하하.”

처음엔 MC가 아니라 패널이었기에 ‘센 캐’(강한 캐릭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강적들’이 처음에는 MC가 따로 없었어요, 제작진이 출연자들을 하나하나 사전 인터뷰해서 각자 발언할 에피소드를 확인하고, 대본도 없이 방송이 시작되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하나씩 공개되곤 했죠.” 제어되지 않은 듯 ‘날것’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적들’의 특성은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김성경 역시 “재벌가와 소개팅” 등 개인 비화까지 소개하며 초창기 인지도가 낮던 시절 프로그램명을 포털 사이트 실검에 올리고 이름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준석, 강용석 등 말발이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 당시 출연진 사이에서도 선명한 인상을 남긴 것. 이런 강한 화제성 덕분에 TV조선 ‘강적들’ 전후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다른 종편에도 생겨났다.

그는 1993년 SBS 공채 3기로 입사해 올해로 방송 경력 딱 30년을 맞았다. SBS 시절 주로 보도 시사프로그램을 맡았는데도, 의외로 CF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이는 2002년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계기가 됐다. 예능 경험을 집중적으로 한 것도 이때. “2000년대 초·중반 10여 년 동안 예능 패널 게스트로 거의 안 나간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세 바퀴에서 VIP 상도 받았고요, 그런데 저는 방송에서 망가져도 시청자들이 망가진 것으로 보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김성경(왼쪽에서 셋째) 아나운서가 '강적들'을 진행하는 모습. /TV조선

예능에서도 망가지지 않은 단단한 이미지는 시사프로그램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 아니었을까. TV조선에서 출연 제의가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아나운서 김성경은 매력 없다, 인간 김성경이 매력 있다’고 했던 ‘강적들’ 당시 제작진의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진행자로서, 스스로의 발언보다 패널들의 인사이트 있는 발언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 보니, 녹화에선 방송되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말을 한다. 프로그램 특성상 패널들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가, 거침없는 패널들의 말을 잘라야 할 때도 있다. 김 아나운서는 “과거 ‘강적들’ 패널 중에는 한창 격앙된 분위기에서 ‘못 하겠다’고 뛰쳐나간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열띤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는 현장이라는 것. “그럴 때는 난감하지만, 다시 없던 것처럼 진행을 하고 카메라에 그 갈등과 대립이 보이지 않게 잘 봉합을 해야죠.” 진행자로서 “나중에 잘 편집되도록 재료를 많이 만들어주는 작업,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재료를 던져주고 완성품을 내놓은 것은 결국 제작진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SBS 신인 아나운서 때 ‘시사와 예능이 결합된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면서 “그때는 시사와 예능 둘 다 해보고 싶다는 의미였는데, 지금 ‘강적들’에서 그 꿈이 실현된 것 같다”고 했다. 2002년 프리랜서 선언 이후 예능 출연을 비롯해, 연극·영화·드라마에서 연기도 했고,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이 모든 경험이 총체적으로 방송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예능을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어필할 수 있는지, 방송에서 텐션(긴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니까 ‘강적들’을 진행할 수 있는 것 같다”면서 “제가 뉴스만 진행했었다면 오래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주위에서 정치 시사토크 프로그램 진행 8년(햇수로는 10년)에 ‘반무당’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대선 판도도 나름대로 보이지만 제가 말할 건 아니고요, 그것보다 제 원칙은 ‘모두 까기’예요.” 여야 가릴 것 없이 이쪽저쪽 비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제게도 뭐랄까 구력 같은 것이 생긴 것은 제가 정치를 전문가들만큼 깊게 알지는 못해도 국민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해온 결과 같다”면서 “스튜디오에 정계·학계 유명인들 나와도 방송에선 내가 전문가니까, 나를 믿어야 한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임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본에 없던 깜짝 질문으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기도 한다. 올 초에 방송된 TV조선 특집 ‘원로에게 묻는다’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그가 즉석에서 제기한 이슈. 한데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으로 이어지면서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권에서 제안은 없었을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서 정치에는 맞지 않아요. 사생활 주목받는 것도 싫고요. 앞으로는 뒤에서 기획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그는 “제가 ‘강적들’ 진행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에도 여성 단독 진행자가 늘어난 것 같아, 그래도 방송계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굉장히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라고 해줄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그런 기회를 준 TV조선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성경은 10년을 이어오고 있는 ‘강적들’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이를 유머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강적들’처럼만 하면 정치도 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좋아요.” 그 스스로도 “분위기가 험악해지거나 핵심적인 발언이 나오지 않을 때 일부러 어리숙한 질문을 던지거나 패널을 기분 나쁘지 않게 놀린다”면서 “유머는 방송에도 도움이 되지만, 원활한 토론에도 매우 유용하다”고 했다. 그는 “유머에는 공격적인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고 상대방의 반대되는 의견도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편집할 때도 유머는 필수 요소. 그는 “우리 정치계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기를 바란다”면서 “지루한 얘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가는 것이 강적들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막상 우리 프로그램에서 품위 있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막상 국회 문턱만 넘어가면 남의 말 안 듣는 사람이 되어버려 답답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정치가 예능화됐다고 걱정하는 분들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도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요즘 정치는 스트레스만 더 쌓이지 않느냐”면서 “‘강적들’이야말로 국민들 스트레스 풀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