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현재의 KBS 사장에게 거취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KBS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2일 KBS 직원들이 이용하는 사내 게시판에는 ‘김의철 사장 결단을 촉구하는 KBS 157인’ 명의로 작성된 ‘우리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서가 올라왔다. 정권 교체를 앞두고 과거 청산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누구보다 ‘적폐청산’에 앞장 섰던 이들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반성과 변화를 촉구한 셈이다. KBS 내부적으로는 지난 5년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출신들이 독점했던 요직 인사와 각종 주요 의사 결정에 대한 불만도 누적되어 있다.
KBS 현직 기자 PD 아나운서 경영직 등 다양한 부서에 소속된 KBS 직원들이 자신의 실명으로 연명한 이 글에선 1. 공영방송의 원칙에 충실할 것 2. 불공정 편파 방송 시정할 것 3. 잘못된 과거 바로잡을 것 등 세 가지를 요구 사항으로 제시했다.
성명서는 김의철 사장에게 “여당이든 야당이든 좌든 우든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객관성·균형성·공정성의 원칙”을 제시하며, “대선 기간 발생했던 광범위한 불공정 방송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대선 불공정 편파 보도에 책임 있는 간부들과 실무자들에 대한 관련 업무 배제”를 요구했다. 아울러 2017~18년 일부 KBS 이사들의 강제 해임과 퇴진에 관여했던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본부노조) 인사들의 보직 해임과 반성 기회 제공, KBS판 적폐청산 조직인 ‘진실과미래위원회’를 통한 직원 징계와 편 가르기 등에 대한 사과 및 시정조치 등을 요구했다.
현재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보직 인사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바로잡으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이날 성명서 발표 직전 단행된 KBS의 새 보직 인사에선 과거 파업을 주도했던 언론노조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는 등 정권 말 ‘알박기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KBS노조(1노조)는 별도 성명서를 통해 “신임 통합뉴스룸 국장은 2018년 강원도 고성 산불사건 때 ‘오늘밤 김제동’은 방송하면서 재난 방송은 늦게 시작한 늑장 방송의 책임자이자,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한다’는 조직 강령을 가진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라며 “김의철 사장이 알박기 불통인사 본색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최근 KBS에서 잇따르고 있는 각종 성명을 보면서, 신구 권력 교체기에 KBS가 또다시 내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도 당시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두고 있던 고대영 전(前)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해, 그해 9월부터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주도하는 장기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감사원의 감사,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시위와 압박을 통해 사장 해임과 추천권을 가진 KBS이사회 주요 이사들이 해임 또는 자진사퇴하는 변화를 겪었다. 이를 통해 KBS이사회가 현재와 같은 친여파 다수 구조로 바뀌었다. 이후 KBS이사회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한 전임 사장을 해임하고 양승동 사장을 임명했다. 사장 교체 이후 새롭게 구성된 경영진은 KBS판 적폐청산 기구로 불리는 ‘진실과 미래 위원회’(진미위)를 통해 전 정부 시절 발생한 불공정 보도 사례를 조사하는 등 이른바 ‘부역행위’에 대한 단죄에 들어갔다. 모두 2017년~2018년 벌어진 일이다. 김의철 현 KBS 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처음 임명한 양승동 전 KBS 사장의 후임자로, 작년 12월 임명돼 2024년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이날 성명서는 보다 많은 KBS인들의 동참을 호소하면서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공영방송의 원칙에 충실하게 정권을 비판했다면 특정 정당의 거짓 프로파간다를 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KBS가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도록 엄정한 공영방송 원칙을 준수하고, 방송의 공정성 확보, 방송의 독립성 확보를 통해 KBS의 비전을 새롭게 세워나가기 위한 모든 투쟁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157명으로 처음 KBS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연대 서명 참여자는 이날 오후 2시30분 현재 168명으로 집계됐다. KBS 전체 직원 숫자는 작년 연말 기준 4300여명으로, 이중 2500여명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본부노조)에 소속돼 있고,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KBS노조(1노조) 소속 노조원 규모는 1200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