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아가씨’ 인도 제작이었나요? 갑분(갑자기 분위기) 발리우드!” “아내 때문에 강제 시청하다 방송 사고인 줄 알았어요.”

36.8% 시청률로 지난달 27일 52부작의 막을 내린 KBS2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40대 재벌남 이영국(지현우)과 14세 연하 발랄한 성격의 여성 박단단(이세희)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엔딩은 온갖 뮤지컬적 요소를 동원한 인도의 영상 산업(발리우드)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제 끝났으니) 풍악을 울려라!’식의 느낌이다.

◇ ‘욕하면서 보는’ 콘크리트 시청률 드라마들

유쾌한 가족드라마를 예고했던 ‘신사와 아가씨’는 결국 출생의 비밀·기억 상실·가정 폭력 등 고질병 같은 한국 드라마 법칙을 답습했다. 지난 23화에서 주인공이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에 맞춰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춤추고 남녀 주인공 키스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른바 ‘발리우드 엔딩’은 최종회에 또 등장했다.

KBS 시청자 게시판엔 ‘작가 절필·은퇴’ 청원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50회에서 2회 더 연장했고 최고 시청률 38.2%(48회)로 2019년 3월 종영한 주말극 ‘하나뿐인 내딸’(49.4%) 이후 가장 높은 인기를 기록했다. 초특급 캐스팅에 천문학적 제작비를 투여한 OTT(동영상 서비스) 채널의 공습에도 30%가 넘는 ‘콘크리트 시청 층’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일일드라마의 ‘막장 지수’에 비하면 주말극은 애교 수준. 5일 종영한 엄현경·차서원·오승아 주연의 MBC 저녁 일일드라마 ‘두번째 남편’은 주인공들이 저마다 핏줄 찾기에 나섰다. 엉킨 가족사를 푸는 장치로 살인 청부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1회 2.9%에서 시작했던 시청률은 120회에서 ‘두 자릿수(10.5%)’로 훌쩍 뛰었고, 120회 예정 드라마가 150회로 30회나 연장됐다. 지난해 방송된 최명길·소이현 주연 100부작 일일극 KBS2 ‘빨강구두’는 엄마가 자식을 버리더니, 불륜 관계에 있는 남성의 뺑소니 살인마저 눈 감아 주고 딸에 대한 살인 미수까지 등장하며 막장에 막장을 더한 ‘수퍼 막장’이란 별칭이 붙었지만, 최종회 19.6%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올렸다.

◇”통속극의 장르화... 코로나 영향도”

OTT 시대에도 공고해진 주말·일일극의 인기는 저비용 고효율의 ‘생활극’을 장르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인간의 본질적 민낯을 드러낸 통속극은 보는 이의 감정 해소 창구 역할을 한다”면서 “골목이나 거실 등 세트도 거의 같고 이웃집 같은 평범함에 동화돼 쉽게 몰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미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텔레노벨라(telenovela·텔레비전 소설)’와 구조가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 불륜·복수 등이 등장하지만, 그냥 틀어놓고 보는 드라마로 불린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코로나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용이 매우 복잡하거나 각자 취향대로 갈라지는 장르보다 엄마의 엄마가 보던 텔레노벨라 유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2022년 주목할 텔레노벨라로 제일 먼저 꼽은 콜롬비아의 ‘라 레이나 델 플로우’의 경우 6일 현재 넷플릭스에서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본 ‘시청 시간 톱10′ 드라마 5위에 올랐다. 이 드라마 역시 여성 주인공이 자신을 감옥에 보낸 남성에게 복수하는 전형적인 내용이다.

통속극에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유의 소재 자체가 막장을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는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는 ‘만듦새’의 차이가 역작과 망작을 가르는 것일 뿐 출생의 비밀은 사실 그리스 신화부터 셰익스피어, 할리우드 영화까지 수많은 명작 속에서 각종 서사의 핵으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면서, “일부러 작품을 찾아보고 놓친 내용을 따라잡는 등의 수고를 즐기지 않는 시청 층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 OTT 틈새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 역시 꾸준히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