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수신료를 폐지해 국민 부담을 줄이는 세계적 흐름과 달리, 한국은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KBS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이 계류 중이다. KBS는 광고 수입 급감 등을 내세우며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KBS는 지난 2007년, 2010년, 2014년에도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지만, 그때마다 반대 여론에 부딪히며 무산됐다. 지난 대선에선 당시 야당 경선 후보들 사이에 ‘수신료 폐지’ 공약까지 나왔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할 때마다 “경영 효율화 없이 수신료만 올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사원이 작년 공개한 KBS 정기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KBS의 예산 집행 총액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36.3%로 다른 지상파 방송사 MBC(20.2%), SBS(19%)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직원 중 억대 연봉자의 비율도 46.4%에 달한다. 과도한 연차수당 지급도 논란이 됐다. KBS는 2018년 기준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일수만큼 지급하는 ‘연차수당 기본금액’을 ‘기본급의 180%’로 적용해, 한 고위급 직원은 연간 1233만원의 연차수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공공기관(87.1%)은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연차수당을 지급한다.

방송 전문가들 사이에선 KBS가 전 세계 여느 공영방송과 달리 상업 광고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기형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방송계 관계자는 “KBS는 공영과 민영의 이점을 모두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KBS의 광고 판매액은 2705억원으로, 재작년 2318억에 비해 1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MBC까지 KBS·EBS와 같이 수신료 등 공적 재원을 지원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성제 MBC 사장은 2020년 한국방송학회 토론회에서 “MBC는 공직선거법·정당법상 공영방송이지만, 공적 재원 지원은 받지 못하고 광고 판매도 제한되는 등 이중적 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사실상 공적 지원을 요구하는 말을 남겨, 세계적 흐름과 반대되는 인식을 보였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잘 보지도 않는데 KBS 수신료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BS에 아예 수신료를 내지 않겠다”는 시민들도 급증했다. 전기 요금에 합산되어 강제 징수된 수신료를 찾아간 가구만 지난해 4만여 가구에 달한다. 이들은 “집에서 TV를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신료를 환불받았다. 이 같은 환불 사례는 2017년 처음으로 2만건을 넘어섰고 작년에 두 배가 됐다. 2019년엔 “수신료를 납부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수신료를 전기 요금과 분리 징수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넘는 국민이 동의하는 등 그동안 강제 징수해온 수신료 폐지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경선 후보로 나섰던 홍준표 현 대구시장과 하태경 의원은 ‘KBS 수신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작년 1월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수신료와 전기료를 분리 징수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작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84.1%)이 KBS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