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 ‘김건희 여사의 논문 통과 과정을 안다는 한 제보자’로 소개된 국민대 내부 관계자. 얼굴을 검게 해 보이지 않게 하고 음성도 변조했으나, 대역 배우였다. PD수첩은 첫 방송에서 ‘재연’ 자막 없이 ‘음성 대독’만 표시했다가, 재편집한 화면에서 ‘재연’ 자막을 추가했다. /MBC PD수첩 화면

지난 11일 MBC PD수첩 ‘논문저자 김건희’ 편에 등장한 다수의 국민대 내부 제보자들이 음성을 변조하고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실루엣 처리된 채 나왔으나 실제로는 대역들이었으며, MBC는 ‘재연 고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외모가 흡사한 대역을 출연시키면서 재연 고지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된 데 이어<본지 13일 자 A10면>, 주요 사실관계에 대한 증언이 제시되는 장면에서 대역이 진짜처럼 인식되도록 음성을 변조하고 얼굴을 보이지 않게 처리한 것은 더 심각한 왜곡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날 방송에서 PD수첩은 “어렵게 연락이 닿은 내부 관계자”라며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관계자를 한 명 출연시킨다. 얼굴은 흐리게 처리되고 목소리도 변조되어 마치 실제 인물을 만난 것처럼 등장했다. 여기에 PD수첩은 ‘김건희 여사의 논문 통과 과정을 안다는 한 제보자’라는 자막까지 넣었다. 하지만, 이 인물은 대역 배우로 드러났다. MBC는 이날 첫 방송에서 ‘재연’ 자막은 쓰지 않고 ‘음성 대독’이라고만 화면 왼쪽 상단에 자막으로 넣었을 뿐이다. 다른 장면에서 ‘당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내부 관계자’ 등 자막을 사용한 인물들도 사실은 대역이었고, ‘재연’ 표시 없이 방송이 나갔다. 이들은 모두 ‘김 여사 논문이 다른 학생들과 달리 너무 쉽게 통과됐다’는 취지로 제작진의 의도에 부합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에 대해 MBC노조(제3노조)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 변조까지 해 누가 봐도 제보자 본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며 “명백히 시청자를 속이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MBC노조는 “14년 전 박사 논문 통과 과정을 기억한다는 그 제보자의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MBC노조는 이날 “PD수첩이 재편집해 올린 수정본을 분석한 결과, 별도 고지 없이 대역 재연을 쓴 장면은 5곳에 이르며, 동원된 배우들은 최소 6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행정규칙인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9조(재연·연출)는 ‘과거의 사건 사고 등을 재연할 때는 재연 화면임을 자막으로 고지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MBC노조는 “한 사람에게 들었을 법한 내용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음성 변조한 대역을 쓴 것도 마치 여러 사람에게 들었던 것처럼 포장해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MBC는 최초 방송에서 재연 배우가 등장할 때 ‘음성 대독’ 고지가 나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MBC는 입장문을 통해 “재연 표기 없이 음성 대독만 표기된 것에 대한 의혹 제기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PD수첩은 당사자들을 취재하였고 취재 원본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말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김건희 여사 대역이 등장한 장면과 달리 해당 장면들은 모두 사실관계를 다루는 장면”이라며 “대역을 쓰면서 실제 인물을 만나 촬영한 것처럼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음성까지 변조한 것은 매우 심각한 방송 윤리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방송계 관계자는 “음성 대독은 성우가 대신 읽었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굳이 변조된 음성을 내보낼 필요가 없다”면서 “전체적으로 화면을 마치 실제 당사자를 만나 인터뷰한 영상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대는 이날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장 이름으로 “PD수첩이 대학원 내부 관계자들이라며 익명으로 전한 내용들은 사실과 달라 정정보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국민대는 김 여사 논문은 “논문계획서 예비심사, 학위청구논문 심사과정 등 다른 논문심사와 동일한 심사와 내용 보완을 거쳐 통과됐다”며 “당시 모든 논문이 통과를 못 하는데 김 여사의 논문만 한 번에 통과했다는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연출을 사실로 둔갑시켜 시청자에게 인식을 왜곡시키려는 시도로 명백한 조작”이라고 비판하며 MBC 경영진 사퇴를 촉구했다.

PD수첩은 지난 2020년 2월에는 서울에 약 9억원대 아파트를 매입한 20대를 무주택자처럼 꾸민 인터뷰를 내보낸 적이 있고<본지 2020년 2월 13일 자 A13면>, 2019년 ‘PD수첩-검찰 기자단’에서도 검찰 출입기자와 검사를 다루면서 다수의 대역 배우를 출연시켜 심각한 취재 윤리 위반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국 사태때는 동양대 직원 인터뷰를 대역 재연으로 내보내 문제가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