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부터 수능 성적표 받고 왔다는 여고생, 그리고 100세 넘은 어르신까지 ‘오빠’를 외쳤다. 가수의 나이는 서른한 살. 심지어 남성 팬들까지도 굵직한 함성으로 “오빠”에 목소리를 보탰다. 팬뿐만 아니라 그가 부르는 곡의 장르 역시 경계가 없다. 록 메탈, 발라드, 힙합, 포크, EDM(전자 댄스 음악), 트로트까지 노래마다 달라지는 발성과 음색. 팬들은 ‘마법 성대’라고 부른다. “매번 성대를 갈아 끼우는 것같이 새롭다”는 뜻이다.
◇”지붕 뚫자”…3만 6000여명 들썩인 ‘신흥 공연 맛집’
10일 공연계 ‘꿈의 무대’라는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 트로트 가수 최초로 임영웅이 섰다. “임영웅이 장르”라는 수식어는 11일까지 진행된 임영웅의 전국 투어 콘서트 ‘IM HERO’(아임 히어로) 서울 앙코르 공연에서 다시 확인됐다.
그가 “신흥 콘서트 맛집”이라고 공언한 대로, 분명 앙코르 공연이었지만 이전 공연과 한층 달라졌다. 최근 선보인 신곡 ‘런던 보이’와 ‘폴라로이드’로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고, 또 정규 1집 수록곡 ‘우리들의 블루스’와 드라마 주제곡 ‘사랑은 늘 도망가’를 새롭게 편곡해 선보이는가 하면 본 공연에 이은 앙코르 곡으로 ‘별빛같은 나의 사랑아’ ‘인생찬가’ 등까지 30곡이 넘는 노래를 이어 불렀다.
힙합에 랩까지 선보이며 “고척 지붕 날려버리자”고 소리 높인 임영웅은 중간중간 격한 댄스가 포함된 노래에도 안정된 음색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앙코르 무대에서 예정에도 없던 라틴팝 ‘데스파시토’를 즉석으로 불러 객석을 뒤흔드는 등 혼자서 3시간여를 채우는 에너지를 과시했다.
들을 거리 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다양했다. 공식 유튜브로 익숙한 부캐(릭터) 임영광을 영상으로 등장시켜 서로 대화를 나누는 포맷을 선보이며 가상 공간 공연에 대한 시도도 엿볼 수 있었다. 걸그룹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 커버 댄스는 애교와 교태 가득한 몸의 곡선을 과시했다.
과거 미스터트롯 당시 ‘삐걱 댄스’로 뚝딱댔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동작을 곁들이며 손가락 마디 끝까지 감정을 실었다.
정규 1집 곡 ‘아비앙또(프랑스어로 ‘또 만나자’는 인사)’를 언어유희로 풀어낸 12분짜리 단편극 ‘아비안도(我備安都)’도 화제. 배우 장광, 박휘순, 한정수 등이 특별출연한 단편 사극 ‘아비안도’에서 임영웅은 ‘건행국’의 5대 왕 영종으로 분했다.
‘하늘이 내린 임금’이란 칭호를 듣는다는 그는 “백성이 즐거우면 그게 곧 법도”라면서 백성을 위한 노래를 만들겠다며 직접 편전에서 내려와 흥을 돋운다. 영웅시대(공식 팬덤) 색상인 하늘색에 착안해 하늘색 곤룡포를 입는 등 ‘임영웅식 세계관’을 더욱 확장한 모습이었다. 이어진 ‘아비앙또’ 무대는 댄서 경연프로그램 ‘스트리트우먼파이터’ 출신 립제이가 안무 연출을 하는 등 완성도를 높였다. 임영웅의 싱잉 랩에 봉산 탈춤, 풍물패 연주 등이 어우러지며 탈장르적 도전을 선보였다.
◇”영웅시대와 함께 차근차근 올라가겠다”…내년 미 LA 콘서트 시동
오늘의 그를 만든 노래 역시 잊지 않았다. TV조선 ‘미스터트롯’ 경연곡으로 안방을 눈물로 적셨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 우승으로 이끈 곡 ‘이제 나만 믿어요’을 부른 그는 “경연 준비했던 게 엊그제 같은 데 고척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됐다”면서 “항상 여러분들이 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신인 시절 곡인 ‘계단말고 엘리베이터’ ‘따라따라’ 등을 추가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어 팬들의 요청에 따라 ‘소나기’ ‘미워요’ ‘두 주먹’ 등 트로트 곡을 무반주로 몇소절 노래하기도 했다. 각각 1만 8000명씩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공연 내내 “임영웅”을 연호했고, 임영웅은 “영웅시대(공식 팬덤명)”로 화답했다. 이날 특히 초등학생부터 100세가 넘는 어르신까지 현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임영웅은 “모든 연령대, 모든 나이가 있을, 참 신기한 공연장”이라면서 “이 순간만큼 자부심을 느끼는 건 없는 거 같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팬들에게 질문을 자주 던지며 대화를 최대한 많이 나누는 것도 임영웅 콘서트의 특징. ‘아이돌은 카메라에 눈 맞추고 트로트는 팬들과 눈 맞춘다’는 공연계 이야기처럼 임영웅은 무대 밑으로 내려가 팬과 만나는 동선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임영웅은 공연 초반 “고척으로 이행시를 준비했다”면서 “고, 고맙고 또 고마운 이 마음. 척, 척하면 척 알아주실 거죠?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며 팬들에게 응원을 장전시키고는 팬들을 또 하나의 ‘가족’을 엮기도 했다. 그는 “영웅시대는 모두 한 가족이니 옆 분들 혹시 모르신다면 인사나누자”면서 “나중에 사돈이 될수도 있고. 선남선녀가 커플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이 꽃피는 영웅시대!”를 외쳤다. 그러면서 자신 앞에 손으로 줄을 긋고는 “저는 차단”이라며 팬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더니, 이내 “5초간 눈맞춤 시간이다”라며 손키스를 전하기도 했다.
자신을 ‘상남자’라고 표현한 임영웅은 “영웅시대 덕분에 상(賞)을 정말 많이 받은 남자”라면서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받지만 빛 뒤에 영웅시대의 수고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모든 공을 팬들에게 돌렸다. 임영웅은 “본인의 곡이 잘될 때 행복감 느끼고 에너지 받는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할 정도”라면서 정규 1집 타이틀 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열창하는 가 하면 드라마 주제곡으로 큰 사랑을 받은 ‘사랑은 늘 도망가’를 부르면서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데 1년 넘게 차트에 있는 게 가능한가”라고 뭉클해하기도 했다.
또 “언젠가 영웅시대 모두를 모시고 콘서트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400명에서 4000명, 4만명까지 차근차근 올라가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내 공연계 최대 공연장인 4만석의 잠실 주경기장을 암시한 다짐이었다.
임영웅은 전국 콘서트부터 이번 앙코르 콘서트까지 219일(10일 기준)간의 공연에 나서면서 독하게 연습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호리호리해진 모습의 그는 공연 중 “이번 콘서트 마치고 조금 쉬다 오겠다”면서 “한 1년?”이라며 눙을 쳤고, 이에 팬들이 당황해하자, “곧 다시 (콘서트) 하면 (몸무게) 30kg 될 것 같다. 워라밸을 위해서라도 쉬어야 된다”며 웃었다. “쉬면서 즐기다 오겠다”는 그의 ‘선언’은 공연 말미에 팬들을 깜짝 놀래킬 소식의 ‘복선’이기도 했다.
공연 마지막에 그는 ‘미 LA 입성’을 선언했다. 내년 2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미 LA 돌비 시어터에서 ‘아임 히어로’ 미국 공연을 연다고 밝혔다. 공식 팬덤 색인 하늘색으로 물든 공연장은 앙코르 무대 영상 속 푸른빛 지구와 하나가 됐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겠다는 임영웅의 포부다. 임영웅은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고 하는데 그 꿈을 놓치지 않겠다. 주신 상만큼 트로피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