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의 순수한 신명이 하염없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잠시 잠재운 것일까. 13세 소년의 한(恨)서린 목소리에 울음바다가 돼 버린 마스터석과 관객석, MC까지 무대 전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을 감추고 이내 소년의 어깨춤 추임새에 리듬을 맞추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이제 12살인 송도현군과 13세인 박성온 군이 이 모든 세상을 알기엔 아직은 어린 나이 일진 몰라도, 둘의 노래가 펼쳐지는 십여분 간 시청자들은 인생의 쓴맛 단맛과 애절함과 허망함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26일 밤 10시부터 방송된 TV 조선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 6회는 지난 주에 이어 본선 2차전 1대1 데스매치가 펼쳐졌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건 ‘차세대 정통 트롯 최강자’ 13살 박성온과 12살 ‘꺾기 신동’ 송도현의 ‘유소년부 라이벌 전’. 서로 우유를 나눠 마시며 뽑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녹화 시간 관계로 전화로 상대를 지목해야 했던 박성온은 선택지가 진해성, 나상도 등 ‘삼촌뻘’ 강자 외에 송도현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 유소년부인 송도현을 택했다.
모든 참가자들의 기피 대상 0순위였던 박성온은 장민호의 ‘내 이름 아시죠’를 택했다. 1997년 아이돌 가수로 데뷔한 뒤 2011년 트로트 가수로 변신해 앨범을 내기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를 기억하며 장민호가 직접 작사 작곡한 사부곡이자 추모곡이다. 장민호는 미스터트롯1 결승 사흘 전 아버지의 납골당을 찾아 ‘잘 하고 오겠다’ 다짐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 안방 극장을 눈물로 적신 바 있다.
“내 이름 아시죠/한 글자 한 글자 지어주신 이름/내 이름 아시죠/가시다가 외로울 때 불러주세요/길 잃으면 안돼요/꿈에 한 번 오세요/잘 도착했다 말해요/조심조심 가세요 넘어지면 안돼요/달님이 그 먼길을 지킬겁니다….”
박성온은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는 짙은 감성에 애절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원곡자 장민호, MC 김성주, 작사·작곡 그룹 ‘알고보니 혼수상’태까지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방청석도, 대기실도 소년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눈물 짓는 이들이 이어졌다.
다음 차례로 등장한 송도현은 이번 미스터트롯이 방송 무대 데뷔인 트로트 신예 중 신예. 김태곤의 ‘망부석’을 미스트롯2의 홍지윤 버전으로 소화해냈다. 박성온의 무대 뒤여서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입술도 타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송도현은 음악이 시작되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면서 ‘흥의 신’이 들어온 듯한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어 무대를 뒤집어 놨다.
“간밤에 울던 제비 날이 밝아 찾아보니/처마 끝엔 빈 둥지만이/구구 만리 머나먼 길/다시 오마 찾아 가나/저 하늘에 가물거리네/에헤야 날아라/헤이야 꿈이여/그리운 내 님 계신 곳에…/
송도현의 망부석은 칼칼하고 티없는 목소리로 절로 어깨 춤을 추게 하는 무대였다. 객석도 마스터석도 누구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함께 어깨 춤을 추며 추임새를 맞췄다. TV 출연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방구석 연습생’인 그는 국악의 ‘구음’을 할 때 박선주 마스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듣는 이를 놀라게 했다.
당시 홍지윤이 결승전 인생곡으로 택한 노래다. 국악을 전공하다 성대 낭종으로 노래를 못부를 위기까지 갔던 홍지윤은 이를 극복하고 아이돌 연습생이 됐지만 이유없이 다리를 쓰지 못해 다시한번 쓰라린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노래하고 싶다는 의지가 그녀를 일으켰고 그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당시 “‘망부석’이 남편을 기다리는 내용인데 저는 제 봄날을 기다리는 의미로 이 곡을 부르겠다”고 말해 박수를 더했다.
결과는 ‘방패’역할을 한 송도현의 10대 5 승. 박성온의 막판 가사 실수가 다소 아쉬웠다. 박성온의 노래 원곡자인 장민호는 “이 노래에 감정을 많이 실을 수록 과해지는 데 지금껏 부른 사람 중 박성온이 가장 담백하게 불러 좋았다”면서 “송도현은 천재 같다. 무대를 하면서 관객이 절로 함께 놀게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장윤정은 “너무 화려한 공작새(박성온)을 보고 난 뒤 야생 꿩(송도현)을 본 느낌”이라면서 “도현이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가 무대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에 기성 가수들도 반성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박성온은 어린 친구들은 끝음 처리가 불안한 경우가 많은데 마치 현악기 다루 듯 완벽히 처리할 줄을 안다”며 극찬하면서도 가사 실수에 대해선 “공작새 깃털 하나가 빠진 듯한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성온은 “딱 맞는 결과”라면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모습을 보였다. 박성온은 앞서 데스매치에서 패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추가 합격을 기다려야 했다.
이번 6회의 문을 연 독종부 이찬성과 대디부 이하준의 데스매치 결과는 ‘호떡집 사장’ 이하준의 15대0 완승이었다. 이찬성은 나훈아의 ‘건배’를 들고나와 시원한 목소리로 ‘건배’하는 포즈까지 취해가며 깔끔한 무대를 펼쳤다. 하지만 대학부의 ‘골반 댄스 일타 강사’ 윤준협에게 특급 쪽집게 과외까지 받으며 남진의 ‘나야나’를마치 뮤지컬 무대처럼 화려하게 소화한 이하준의 관록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연극·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뒤 2021년 트로트 트리오 ‘더블레스’로 트로트 가수로도 데뷔한 이하준은 그간의 경력을 무대위에서 마음껏 쏟아내며 능수 능란하게 무대를 지휘했다.
그 다음 펼쳐진 ‘샛별부’ 영광의 선공. 임현정의 ‘그여자의 마스카라’를 택한 영광은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로 맞받아친 ‘대학부’ 강재수에게 5대 10으로 패했다. ‘그여자의 마스카라’는 사랑의 콜센타에서 이찬원이 불러 화제가 됐던 노래. 아이돌처럼 커다란 눈매에 깔끔한 목소리로 예심 올하트를 기록했던 영광이었지만 대학 3년간 건축관련 자격증 6개를 따낼 정도로 ‘독종’이었던 강재수에게 이날 만큼은 환희의 영광대신 패배의 쓴잔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영광에 대해 “곡 호흡 조절이 굉장히 좋았고 해석이 좋았다”고 칭찬했고, 붐은 영광이 목 쪽에 붙인 키스 스티커 타투에 관심을 보이며 “매력적인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박선주 마스터는 강재수에 대해 “첫 소절이 지난 뒤 누군가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시를 읊어내듯이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표현인데 그 부분 만큼은 정말 완벽하게 해냈다”고 칭찬했다.
강재수가 택한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는 도종환 시인의 시에 작곡가겸 가수 정의송이 곡을 만든 노래. 미스트롯2 토크콘서트에서 윤태화가 불러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뺐던 숨은 명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