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창. 방패와 방패의 대결이었다. 누가 창이고 누가 방패라고 감히 부르기 어려운 대결이었다. 특급 소화제처럼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탄탄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중무장한 예심 진(眞) 박지현과 ‘샛별부’ 대신 ‘독종부’로 나왔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달만에 태평소를 전공자처럼 마스터한 마성의 미성 소유자인 본선 진(眞) 진욱의 대결. 둘의 뜨거운 대결은 난방비 걱정도 잠시 날려버릴 정도로 안방을 후끈하게 만들었다.
26일 밤 10시부터 방송된 TV조선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대결, 1대1 데스매치가 펼쳐졌다. 27일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시청률은 21.8%를 기록(전국 유료 가구 기준)하며 자체 최고를 다시 경신했다.
◇너를 넘어야 내가 성장한다...진과 진의 대결, 박지현이 먼저 웃었다.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진’의 타이틀을 건 맞대결. 선공자 진욱이 대결상대로 박지현을 택하면서 이뤄진 결전이었다. 진욱은 “성장을 하려면 잘하는 사람과 맞붙어야 성장할 것이라 생각해서 선택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나훈아의 무심세월을 택한 진욱은 정통 트로트로 화끈하게 화력을 지폈다. 진욱은 어린 시절 신동으로 활약하며 아역 배우와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한 바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병환으로 각종 공사판 노동일 등으로 가정을 짊어지느라 20대를 보낸 자신에게 보내는 송가 같기도 했다.
“무심한 세월아 냉정한 세월아/너는 어찌 그리도 빠르니/너 따라 가려니 이젠 힘이 들구나/우리 잠시 쉬었다가자/얄궂은 세월아 변덕쟁이 세월아/나 어릴 땐 그리도 늦더니/숨 가쁜 한 세상 앞만 보고 왔는데/어서 따라 오라는 세월/* 나는 쉬엄쉬엄 쉬며 갈 테다/허리 한번 쭉 펴고/좋은 사람들과 놀다 갈 테니…”
부드러운 미성으로 통했던 진욱은 밑바닥부터 끌어올리는 강한 고음과 탄력있는 목소리로 어릴 적 ‘신동’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월 방송된 장윤정·도경완의 ‘도장깨기’에 출연해 목소리 관련 고민을 밝혔던 진욱은 당시 강약에 포인트를 명확하게 주라는 등의 장윤정의 조언을 200% 완수한 느낌이었다.
이에 맞선 박지현은 김상배의 ‘떠날 수 없는 당신’으로 맞받아 쳤다. 훤칠한 모습에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하는 포즈로 경연장을 팬미팅 장처럼 만들어버렸다. 당일 네이버 TV 1분간 선공개에만 8만회 조회수에 댓글 3000개가 넘게 붙을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보였다. 하늘색 수트로 빼입은 그는 대학부 동료인 윤준협의 특기인 ‘골반 댄스’까지 장착하며 여심을 뒤흔들었다.
슬픈 가사였지만 리듬감이 강한 비트의 노래에 호흡 조절과 무대 매너도 수준급이었다. “나를 너무 모르시는/모르시는 당신이여/(…)무심한 탓입니까/이 가슴 멍들기 전에/(…)떠날 수 없는 당신”이라는 가사는 박지현을 대중에 더욱 알리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대기실에서는 “둘다 진(眞)답게 불렀다”는 소리가 속출했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진욱씨가 보석 같은 보이스에 엔딩까지 감정을 끌고 갈 때 감탄했다”면서 “박지현은 필(feel) 천재같다. 1절과 2절에 ‘당신이여’만 봐도 끼를 부리거나 애틋하게 필(feel)을 다르게 다루는 걸 보니 스타성이 있다”고 했다. 장윤정 마스터는 “진욱씨는 섬세한, 중성적인 느낌이 날 만큼 표현법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연습하는 것과 집중력에 있어 칭찬하고 싶고, 지현씨는 여유가 대단하다. 객석에서 즐기는 것에 대해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훌륭한 무대였다”고 말했다. 결과는 박지현의 8대7. 단 한표차 신승(辛勝)이었다.
박지현은 결과를 보고 펑펑 눈물을 흘리며 “연습 많이 했는데 목이 안좋아서 걱정했는데 많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무대 뒤에서 진욱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진욱은 결과에 대해 “성장하려면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수호의 재발견...쥐락펴락 목소리 자체가 악기
바로 직전 무대는 대학부 최수호와 현역부 추혁진의 대결. 목소리로만 무대를 꽉 채운다면 그건 바로 최수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연분홍빛 슈트를 입은 ‘밀크남’의 절절한 목소리는 진성과 가성, 판소리의 구음을 오가며 목소리 자체가 악기로 변신했다.
13살 때부터 판소리를 전공했다는 21살의 최수호.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최고의 무기로 진검 승부하겠다는 각오를 선보였다. 이날은 박성온과 송도현의 ‘유소년 대첩’에서 송도현이 박성온에게 승리를 거둔 데 이어 대학부 최수호와 현역부 추혁진의 경연이 펼쳐졌다. 추혁진은 미스터트롯1 데스매치에서 김희재에게 고배를 마신 바 있어 더욱 시선을 끌었다.
등장부터 묘한 긴장감이 흐른 두 사람의 맞대결은 최수호가 추혁진을 향해 “선곡 미팅 때 제 노래 듣고 졸리다고 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평생 주무시게 만들어드리겠다”라고 선전포고 하자 추혁진이 “그동안 고생 많았고... 수호야, 집에 조심히 가수호~”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송가인의 ‘월하가약’을 들고 나온 최수호에게 맞선 추혁진은 진성의 ‘진안 아가씨’로 대응했다.
원곡자인 진성 마스터는 “추혁진은 목으로 하는 느낌이 있지만 탁월한 목소리여서 트로트와는 밀접하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평했다. 박선주 마스터는 ‘저승사자’ 별명을 내려놓고 최수호에게 극찬을 던졌다. 그는 “최수호씨가 노래 잘하신다”면서 “음정부터 구음까지 완벽해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 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영훈 마스터는 “월하가약 노래를 들으면서 대한민국 가수 중에 소화 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했다. 박자 타기도 어렵고 성대를 계속 뒤집어야 하는 노래여서 감히 도전조차 할수 없는 노래인데 21살 최수호가 자기 노래처럼 하는 게 대단했다”면서 “추혁진 씨는 트로트의 맛 감칠맛, 꼬집는 맛, 나훈아 선배님처럼 꼬집는 맛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했다. 결과는 ‘트롯밀크남’ 최수호의 승리. 13대 2였다. 두번의 데스매치도전에 두번 다 패한 추혁진은 추가합격을 기다려야 했다.
‘돌아온 트롯 신동’ 장송호는 ‘사모’를 선곡해 한마디 한마디 가슴 절절한 호소력을 선보이며 ‘역시’라는 찬사를 듣게 했다.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실용음악과 2년 차 후배인 ‘리틀 싸이’ 황민우는 댄스 신동 답게 ‘하니 하니’를 선곡해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꾸민 환상적인 ‘메가 크루’ 무대로 데스매치를 바로 공연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화려한 댄스 브레이크만 두고 보면 ‘미스터트롯’인지 ‘프로듀스 101′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마스터들은 트로트 ‘선배’의 손을 들어줬다. 장송호가 10대 5로 황민우에게 승리를 거뒀다.
◇감성과 순수의 ‘소년대첩’...박성온, 송도현에게 좌절
12세의 순수한 신명이 하염없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잠시 잠재운 것일까. 13세 소년의 한(恨)서린 목소리에 울음바다가 돼 버린 마스터석과 관객석, MC까지 무대 전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을 감추고 이내 소년의 어깨춤 추임새에 리듬을 맞추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이제 12살인 송도현군과 13세인 박성온 군이 이 모든 세상을 알기엔 아직은 어린 나이 일진 몰라도, 둘의 노래가 펼쳐지는 십여분 간 시청자들은 인생의 쓴맛 단맛과 애절함과 허망함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건 ‘차세대 정통 트롯 최강자’ 13살 박성온과 12살 ‘꺾기 신동’ 송도현의 ‘유소년부 라이벌 전’. 서로 우유를 나눠 마시며 뽑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녹화 시간 관계로 전화로 상대를 지목해야 했던 박성온은 선택지가 진해성, 나상도 등 ‘삼촌뻘’ 강자 외에 송도현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 유소년부인 송도현을 택했다.
모든 참가자들의 기피 대상 0순위였던 박성온은 장민호의 ‘내 이름 아시죠’를 택했다. 1997년 아이돌 가수로 데뷔한 뒤 2011년 트로트 가수로 변신해 앨범을 내기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를 기억하며 장민호가 직접 작사 작곡한 사부곡이자 추모곡이다. 장민호는 미스터트롯1 결승 사흘 전 아버지의 납골당을 찾아 ‘잘 하고 오겠다’ 다짐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 안방 극장을 눈물로 적신 바 있다.
“내 이름 아시죠/한 글자 한 글자 지어주신 이름/내 이름 아시죠/가시다가 외로울 때 불러주세요/길 잃으면 안돼요/꿈에 한 번 오세요/잘 도착했다 말해요/조심조심 가세요 넘어지면 안돼요/달님이 그 먼길을 지킬겁니다….”
박성온은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는 짙은 감성에 애절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원곡자 장민호, MC 김성주, 작사·작곡 그룹 ‘알고보니 혼수상’태까지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방청석도, 대기실도 소년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눈물 짓는 이들이 이어졌다.
다음 차례로 등장한 송도현은 이번 미스터트롯이 방송 무대 데뷔인 트로트 신예 중 신예. 김태곤의 ‘망부석’을 미스트롯2의 홍지윤 버전으로 소화해냈다. 박성온의 무대 뒤여서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입술도 타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송도현은 음악이 시작되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면서 ‘흥의 신’이 들어온 듯한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어 무대를 뒤집어 놨다.
“간밤에 울던 제비 날이 밝아 찾아보니/처마 끝엔 빈 둥지만이/구구 만리 머나먼 길/다시 오마 찾아 가나/저 하늘에 가물거리네/에헤야 날아라/헤이야 꿈이여/그리운 내 님 계신 곳에…/
송도현의 망부석은 칼칼하고 티없는 목소리로 절로 어깨 춤을 추게 하는 무대였다. 객석도 마스터석도 누구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함께 어깨 춤을 추며 추임새를 맞췄다. TV 출연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방구석 연습생’인 그는 국악의 ‘구음’을 할 때 박선주 마스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듣는 이를 놀라게 했다.
당시 홍지윤이 결승전 인생곡으로 택한 노래다. 국악을 전공하다 성대 낭종으로 노래를 못부를 위기까지 갔던 홍지윤은 이를 극복하고 아이돌 연습생이 됐지만 이유없이 다리를 쓰지 못해 다시한번 쓰라린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노래하고 싶다는 의지가 그녀를 일으켰고 그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당시 “‘망부석’이 남편을 기다리는 내용인데 저는 제 봄날을 기다리는 의미로 이 곡을 부르겠다”고 말해 박수를 더했다.
결과는 ‘방패’역할을 한 송도현의 10대 5 승. 박성온의 막판 가사 실수가 다소 아쉬웠다. 박성온의 노래 원곡자인 장민호는 “이 노래에 감정을 많이 실을 수록 과해지는 데 지금껏 부른 사람 중 박성온이 가장 담백하게 불러 좋았다”면서 “송도현은 천재 같다. 무대를 하면서 관객이 절로 함께 놀게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장윤정은 “너무 화려한 공작새(박성온)를 보고 난 뒤 야생 꿩(송도현)을 본 느낌”이라면서 “도현이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가 무대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에 기성 가수들도 반성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박성온은 어린 친구들은 끝음 처리가 불안한 경우가 많은데 마치 현악기 다루 듯 완벽히 처리할 줄을 안다”며 극찬하면서도 가사 실수에 대해선 “공작새 깃털 하나가 빠진 듯한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성온은 “딱 맞는 결과”라면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모습을 보였다. 박성온은 앞서 데스매치에서 패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추가 합격을 기다려야 했다.
이번 6회의 문을 연 독종부 이찬성과 대디부 이하준의 데스매치 결과는 ‘호떡집 사장’ 이하준의 15대0 완승이었다. 이찬성은 나훈아의 ‘건배’를 들고나와 시원한 목소리로 ‘건배’하는 포즈까지 취해가며 깔끔한 무대를 펼쳤다. 하지만 대학부의 ‘골반 댄스 일타 강사’ 윤준협에게 특급 쪽집게 과외까지 받으며 남진의 ‘나야나’를마치 뮤지컬 무대처럼 화려하게 소화한 이하준의 관록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연극·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뒤 2021년 트로트 트리오 ‘더블레스’로 트로트 가수로도 데뷔한 이하준은 그간의 경력을 무대위에서 마음껏 쏟아내며 능수 능란하게 무대를 지휘했다.
그 다음 펼쳐진 ‘샛별부’ 영광의 선공. 임현정의 ‘그여자의 마스카라’를 택한 영광은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로 맞받아친 ‘대학부’ 강재수에게 5대 10으로 패했다. ‘그여자의 마스카라’는 사랑의 콜센타에서 이찬원이 불러 화제가 됐던 노래. 아이돌처럼 커다란 눈매에 깔끔한 목소리로 예심 올하트를 기록했던 영광이었지만 대학 3년간 건축관련 자격증 6개를 따낼 정도로 ‘독종’이었던 강재수에게 이날 만큼은 환희의 영광대신 패배의 쓴잔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영광에 대해 “곡 호흡 조절이 굉장히 좋았고 해석이 좋았다”고 칭찬했고, 붐은 영광이 목 쪽에 붙인 키스 스티커 타투에 관심을 보이며 “매력적인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박선주 마스터는 강재수에 대해 “첫 소절이 지난 뒤 누군가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시를 읊어내듯이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표현인데 그 부분 만큼은 정말 완벽하게 해냈다”고 칭찬했다.
강재수가 택한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는 도종환 시인의 시에 작곡가겸 가수 정의송이 곡을 만든 노래. 미스트롯2 토크콘서트에서 윤태화가 불러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뺐던 숨은 명곡이었다.
마지막으로 벌어진 관록의 나상도와 패기의 강태풍의 대결은 나상도의 13대 2 완승이었다. 나상도는 ‘미운 사랑’을 특유의 부드럽고 간드러지는 정통으로 나섰고, 매서운 기세의 강태풍은 ‘꽃미남 홍춘이’로 무대를 들썩였지만 역시 연륜이 한발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