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예진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사철가’의 첫 대목이다. 언제부턴가 모임에서 부르기 시작하자 호응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러댄 끝에 나의 애창곡이 됐다. 단가(短歌) 사철가는 가객이 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서 부르는 짧은 노래다. 사계절 변화에 따라 느끼는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기막히게 표현한 가사와 곡조에 감탄이 절로 난다. 듣고 있자면 추임새는 기본, 무릎 박자도 나를 거든다.

문득 국악에 관한 나의 관심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봤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접한 농악과 가끔 우리 마을에 머물다 간 유랑 극단의 공연 덕분이 아닐는지. 고향 마을에는 ‘매굿’이 있었다. 정월 대보름, 당산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성껏 당산제(堂山祭)를 지낸 뒤, 농악대가 마을을 돌며 신바람 나게 흥을 돋웠다. 멀리서 오방색 깃발이 보이고 농악 소리가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가 농악대 행렬을 뒤따랐다. 며칠이 지나도 신바람과 신명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온 마을을 누비며 그들을 따라 흉내 내곤 했다.

이제 고향에 내려가도 매굿을 쳤던 어른들을 찾기 어렵고 꽹과리와 징, 북을 보관했던 창고마저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다행히도 2014년 유네스코가 우리 농악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세계에 더 알려졌다. 그러나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풍요를 기원하며 여흥을 즐기던 마을 공동 의례이자 축제였던 ‘농악’은 어디서 찾을 수 있으려나?

요즘 영화와 드라마, 공연 등에서 우리 국악 콘텐츠를 활용해 만든 작품을 수없이 만난다.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의 이날치 판소리에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현대 무용을 조합한 ‘범 내려온다!’와 소리꾼 이희문의 공연을 감상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뜬다. 그들이 중독성 강한 춤을 추며 재미있게 노래하는 영상은 누적 조회 수가 수억을 기록한 지 오래다. 재기 발랄한 젊은 세대가 우리 국악을 대중 취향에 맞춰 무한한 콘텐츠로 창작하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곧 꽃 피는 봄이 온다. 팔도가 우리 가락에 맞춰 우리 춤을 신명 나게 추는 날이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