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한 유튜브 채널에 ‘한국 비하 중국 유학생 참교육’이란 동영상이 올라왔다. 미국 유명 사립대학인 밴더빌트의 토트 빌링스 교수와 중국 학생이 벌이는 설전. 중국 학생이 “한국인은 잘 씻지 않는다”고 하자, 교수가 “중국인은 길에서 볼일을 본다”고 반박한다. 국내 유튜버가 만든 2분 24초 길이의 이 영상은 한 시간 만에 조회 수 2만을 넘겼다.
영상은 가짜였다. 본지가 밴더빌트 대학 아시아학부에 해당 동영상 캡처 사진을 보내주고 문의한 결과, “역사학과나 아시아 전공 학부에 저런 이름의 교수나 강의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진을 얹은 영상에 음성을 합성해 주는 TTS(Text to Speech) AI(인공지능)를 이용해 어눌한 동양인 발음을 만들고, 다시 원어 발음의 미국인 현지 교수 음성을 합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가짜 ‘국뽕’ 영상으로 조회 수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회 수만 올릴 수 있다면, 허위·조작 동영상 만드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최근엔 ‘백종원 빚만 100억원 남기고 사망’ ‘김연아, 고유림과 이혼’ 등 연예인을 둘러싼 가짜 뉴스도 급증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을 걸고 클릭하면 광고로 연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부지기수다. 정치 유튜브들도 좌우를 막론하고 ‘좌파 코인’ 또는 ‘우파 코인’을 노리고 극단적 주장을 펼친다. 유튜브는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1순위(2020년 ‘시사IN’ 신뢰도 조사)이자, ‘허위 정보 유통 경로’ 1위(유튜브 정보 규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인식 연구,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라는 극단적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한국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플랫폼을 직접 규제하는 국제적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다. 유튜브 및 인터넷 게시물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접속 차단한 유튜브 동영상은 5083건으로 직전 연도의 5.4배에 달한다. 해당 영상을 지우지도 못하고, 국내 ISP 업체를 통해 접속을 차단한 것이다. 그나마 이 영상들은 대부분 위법성이 큰 음란물이나 마약, 사실관계가 명확한 가짜 뉴스 등이다. 피해 당사자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의 경우 거의 걸러내지도 못하고 있다.
정부도 최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가짜 뉴스 태스크포스 기능을 강화하고, 언론진흥재단에 ‘가짜 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했지만, 근원적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다. 방심위 고위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 업체들에 시정 요구나 문제 콘텐츠에 대한 자율 규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이들의 판단 기준은 자의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궁극적으로 EU처럼 플랫폼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이 우리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