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지난 5일 KBS TV 수신료(월 2500원)를 전기 요금과 분리 납부하는 방안을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한 것에 대해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를 철회하면 사퇴하겠다”고 조건부 사퇴 의사를 밝혔다. KBS의 불공정·방만 경영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불거진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에 자신의 거취 문제를 걸어 ‘방송 탄압’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국민 목소리는 전혀 들을 생각이 없고, 오직 자기들의 기득권이나 이권을 지키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KBS가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나 방송 환경은 무시한 채, 방송 탄압 프레임을 만들어 이 문제를 인사와 연결 짓는 것은 유감”이라며 “다수가 KBS의 공정성, 방만 경영 등을 문제로 지적하는 상황에서 KBS가 사즉생 각오로 우선 할 일은 사장직을 거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KBS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수신료 분리 징수 요구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불공정 보도하면서 전 국민에게 세금처럼 수신료 걷나”
이날 KBS 이사 11명 중 ‘소수파(현 여권 추천)’에 속하는 권순범(전 KBS 시사제작국장), 김종민(변호사), 이석래(전 KBS 미디어텍 대표이사), 이은수(전 KBS 심의실장) 이사는 이날 KBS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에 대한 극단적 여론의 존재가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며 “경영진과 이사진 전부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이사 4명은 “김의철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사장) 자리를 두고 내기나 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그가 지금의 수신료 분리 징수 사태에 대한 인식이 안이하다는 것을 넘어, 객관적인 시각이 없음을 드러낸다”고 했다.
김종민 이사는 “현재 성재호 KBS 보도국장을 비롯해 3연속으로 보도국장을 민노총 노조위원장 출신이 맡고 있다”며 “민노총 출신을 앉히라고 국민들이 수신료를 주었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KBS는 적자가 나고 있는데 왜 하필 주진우 라이브라는 편파 불공정 보도를 하는 주진우에게 연간 수억 원으로 추정되는 출연료를 주고 있나”라고도 했다.
이은수 이사는 “대통령 방미 기간 KBS1 라디오 출연진을 보면 첫날에는 민주당 및 진보 성향 의원 16명이 대거 출연해 방미를 폄훼하는 방송을 했는데, 보수 색깔 출연자는 단 한 명이 출연해 16:1이었다”며 “월드컵에도 16:1은 없다. 과거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하에서도 6:4, 5:5, 못해도 7:3으로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최근 민노총 사건 보도 사라진 KBS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KBS는 “검찰이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를 받는 민노총 전·현직 간부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긴 이른바 ‘민노총 간첩단 사건’이 KBS 9시 뉴스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KBS방송인연합회)는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18일에는 민노총 집회와 관련, KBS 앵커가 9시뉴스에서 집회의 불법성 논란을 다룬 리포트를 소개하면서 사실과 다른 멘트를 했다가 옷을 바꿔 입고 멘트를 일부 수정해 재녹화한 영상으로 앵커 멘트 화면을 바꿔치기하기도 했다.
지난 정부 시절인 2021년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서울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시장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소위 ‘생태탕 보도’의 진원지도 KBS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엔 철학자 김용옥과 배우 유아인이 진행하는 ‘도올아인 오방간다’(KBS1 TV)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의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주장이 전파를 탔다.
각종 미디어가 넘쳐나는 가운데 공영방송이 정보 시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특정 진영의 시각을 국민에게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석래 이사는 “분리 징수에 96.5%가 찬성했는데 이런 뜻이 확인된 것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3명이 분리 징수법을 발의한 적이 있었으나 국회와 정부가 머뭇거리다가 최근 5년간 KBS의 불공정성, 무능 경영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국민이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처신하지 않는다면 KBS 수신료가 갖는 특별 부담금 성격, 공영방송의 역할, 효율적 징수의 필요성 주장 역시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