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KBS 언론노조 출입 저지 시위에… 전치 2주 상해 - 2017년 9월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KBS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강규형 당시 KBS 이사에게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달려들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 이사는 이날 좁은 공간에서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안경이 벗겨지고 신체가 압박을 받는 등 피해를 입어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고운호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KBS 이사에서 강제 해임됐다가 문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벌여 승소한 강규형 전 KBS 이사(59·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9일 “현 KBS 경영진은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방송 장악인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김의철 KBS 사장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전날 김 사장이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전임 정권에서 사장이 된 저 때문이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한 것에 대해 “전 정부에서의 방송 장악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라고 했다.

강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김 사장이나 현재 KBS 주요 경영진은 문 정부 5년 동안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민노총의 기간 방송으로 만드는 주역을 했던 인물들 아니냐”면서 “김 사장 역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각종 선동적인 내용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고, 저를 포함한 KBS 이사들을 몰아내는 집회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2017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 추천 KBS 이사였던 강 교수에 대한 해임을 건의한다. 강 이사만 찍어 올린 ‘표적 해임’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바로 승인했다. 이후 강 교수는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해 3년 8개월 만인 지난 2021년 9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2022년 5월 최창학 전 한국국토정보공사(LX) 사장이 문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 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과 함께, 지난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이뤄진 문 대통령의 인사 조치에 맞서 제기된 해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대표적 사례로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KBS에선 언론노조KBS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앞장서 강 교수를 포함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KBS 이사들을 몰아내는 퇴진 운동을 거세게 벌였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KBS 사장을 바꾸고 싶은데 KBS이사회에서 당시 여당 추천 이사 숫자가 적었어요. 저를 포함해 전 정부 시절 임명된 이사 2명만 쫓아내면 수적(數的)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노조가 나섰던 것이죠.”

2017년 이사 퇴임 앞장선 김의철 - 2017년 당시 이사 퇴진 시위에 참석했던 김의철 KBS 사장. /KBS노동조합

당시 KBS언론노조 조합원들은 강 교수를 포함해 일부 이사들의 직장인 학교나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강 교수의 학교에 비방 벽보를 붙이고 학교 정문에 확성기를 틀고 집회를 벌이는 등 집단 린치에 가까운 압박을 가했다. 강 교수 집 근처에 노조원들이 숨어 있다가 가족들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다. 강 교수는 “그때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보도국장석에 앉아서 현재 KBS의 편향 왜곡에 항의하는 사람을 불러 겁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KBS 이사 교체의 본질은 결국 ‘방송 장악’이었으며, 결국 김 사장 등을 포함해 언론노조KBS본부가 선봉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강 이사와 함께 퇴진 요구에 시달렸던 나머지 이사들은 모두 언론노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는 길을 택했다. 그 탓에 해임 무효 소송을 벌이지도 못했다. 강 교수만 혼자 해임되는 길을 택한 뒤 소송을 벌여 해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강 교수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크고 작은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문 정부는 강 이사 등을 몰아 내고 KBS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점한 뒤 고대영 당시 사장 등을 해임하고 경영진을 교체했다. KBS판 적폐 청산 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도 만들어졌다. 2018년 6월 ‘전 정권과 경영진 시절 벌어진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 훼손 사례를 밝히겠다’는 명분으로 설립되어 10개월간 활동한 진미위는 2019년 4월까지 총 22건의 KBS 내 보도 공정성·독립성 사례를 조사, 이 중 5건을 근거로 총 19명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다. 강 교수는 “진미위는 직원들의 과거 정권 시절 행적을 파악해 인적(人的) 청산을 하는 역할을 했다”면서 “김 사장도 당시 4명이었던 진미위 위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한 만큼 정부가 마음먹고 방송을 장악할 때 어떤 식으로 하는지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정필모 위원장을 비롯해 김 사장과 김덕재 부사장 등 ‘진미위’ 위원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KBS나 MBC 모두 문재인 정부 이후 지금까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다”면서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전(全) 국민한테 수신료를 달라고 할 수 있나. 수신료는 공정 방송을 할 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 역시 KBS 이사 시절 수신료 문제를 깊이 고민했었다. 강 교수는 “수신료를 받는 것은 이제 옛날 방식이다. 일본과 영국도 수신료를 없애거나 낮추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미국 공영방송 PBS와 NPR은 마침 제가 미국 유학 시절 박사과정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던 맥아더 재단(John 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면서 “이들은 수신료 없이도 국민들에게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외국과 달리 수신료를 준조세처럼 받고 있는데, 이는 KBS가 공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면서 “지금처럼 편파적으로 진영을 앞세운 방송을 하는 KBS가 국민들한테 수신료를 강제 징수할 수 있느냐, KBS는 결코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KBS는 억대 연봉자가 전체 직원의 51%에 이르는 등 불필요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 사람들의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부담해주기 위해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도 이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했다. 또 “국민들 중 상당수는 이제 OTT(동영상 스트리밍)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보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KBS를 시청하지 않는 국민들의 선택권도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