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직원들의 업무 배치나 휴직, 희망퇴직 등에 노조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노사 협약 안건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의철 KBS 사장 등 현 경영진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KBS본부가 제안한 이 협약안을 받아들일 경우, KBS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온 방만 경영 해소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KBS의 ‘철밥통 지키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KBS 내외부 인사들에 따르면, KBS언론노조는 노사가 동수로 참여하고, 고도의 경영기밀에 해당하는 자료까지 내부 의결을 통해 열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고용안정위원회’ 구성을 최근 사측에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안정협약에 따라 설립되는 이 위원회는 경영상 이유로 인한 직원 배치 전환과 휴직, 희망퇴직, 해고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회사의 분할·합병·매각 등 경영 환경 변동에 따른 구조조정이 있을 때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과 근로 조건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아직 체결되지 않았고, 향후 내용에 수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협약의 본질적 내용은 공영방송의 경영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말했다.
TV 수신료 분리징수에 이어 방송 환경 변화에 따른 KBS 2TV 민영화 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KBS 노사가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개혁에 저항하기 위한 일종의 ‘대못 박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KBS 언론노조가 제안한 고용안정위원회는 특히 ‘공사(KBS를 지칭)는 협약 체결 당시 근로자의 노동조건을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하여 적정 인력을 보장하며, 향후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자산의 인수, 분할, 합병, 양도, 매각 등으로 이전하는 근로자들의 고용 및 근로조건, 단체협약의 제 권리 일체(조합활동 포함)는 그대로 유지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규정 등 현재의 고용 형태를 고착화시키는 내용들이 많다.
이에 대해 KBS 사측 관계자는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상생 방안 마련을 위한 임시노사위원회에서 언론노조가 제안할 초안이며, (이런 요구를 한다면) 사측으로선 ‘노조는 어떤 자구 노력을 할 것인지’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KBS 관계자는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에 변동이 생기는 만큼 KBS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전 정부에서 임명된 야당 추천 인사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KBS이사회에선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안은 시기와 내용에서 모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언론국민연대 최철호 대표(전 KBSN 대표)는 “편파 방송과 경영 위기에 대한 책임론이 방송사 안팎으로부터 쏟아지는 시기에 문책 당사자들이 협약을 맺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런 내용의 협약은 KBS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며 사실상 언론노조에 경영권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경영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고 회사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협약을 받아들일 경우, 경영진이나 KBS이사회의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며 “기존 협약이나 근로 조건과 비교해 상궤를 벗어난 협약 내용이 통과된다면 차기 경영진이나 KBS 이사회에서 무효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