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쌀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놓는 한 상 차림’을 뜻하는 우리네 ‘백반(白飯)’엔 많은 게 담겨 있다. 식구를 생각하며 장을 보고 매 끼니 반찬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 어느 하루 쉬운 날 없는 직장인들의 애환, 가장 좋은 재료를 밥상에 올리고자 수고하는 농부의 땀방울까지. 2019년 5월 14일 처음 방송한 ‘식객(食客) 허영만의 백반기행’은 이런 백반 한 상에 담긴 뜨끈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만든 프로그램이다.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포맷으로 제작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화 ‘식객’ 원작자인 허영만이 일상과 허기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전국 각지의 감칠맛 나는 백반을 소개한다.

그래픽=이진영

2019년 5월 전라남도 강진에서 시작한 백반기행은 어느새 218회를 맞이하는 TV조선의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백반기행은 식당에서 광고나 협찬을 전혀 받지 않는다. 제작진이 신분을 숨기고 식당을 몰래 방문해 실제 나오는 음식을 먹고 판단한다. 이를 통해 지난 4년간 식당 833곳을 다니며 그 지역, 그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팔도의 ‘진짜 맛’을 소개할 수 있었다. 매회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특별 손님이 출연한다는 것도 백반기행의 매력 포인트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배우 김희선, 손석구, 가수 싸이 등 지금까지 출연한 게스트만도 228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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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출연 편, 가장 높은 시청률 기록

여태껏 방송한 백반기행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건 2021년 12월 3일 방영한 ‘대선 후보 백반’ 편이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 대표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서울의 숨은 맛집’을 주제로 각각 서울 을지로의 한 가맥집, 종로의 칼국수 집 등을 찾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개한 방송은 두 사람의 출연만으로도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특히 백반기행 특성상 여야의 정치 공방이 아닌 훈훈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2020년 10월 2일 가수 하춘화와 전남 영암으로 떠난 백반기행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춘화가 실제 고향을 찾을 때면 늘 보양식으로 즐긴다는 낙지 요릿집 등 그야말로 제대로 된 전라도식 백반 한 상이 차려져,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메리츠 자산운용 전 대표 존리와 찾은 서울 명동 백반은 옛 명동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부’를 이룰 수 있는 원칙을 맛깔스러운 음식과 함께 풀어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다. 배우 김영옥과 함께 떠난 충북 영동 맛집은 허 화백보다 연장자인 김영옥이 인생의 깊이만큼 맛의 깊이를 남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가수 이찬원이 고향 맛집을 소개한 ‘진또배기 대구 밥상’ 편도 시청률 상위권에 올랐다.

◇팬심으로 출연한 싸이, 여자 게스트 중 가장 잘 먹은 김희선

제작진은 기억에 남는 게스트로 가수 싸이와 배우 손석구를 꼽았다. 두 게스트 모두 한창 스케줄이 많아 바쁜 시기었는데도, 허영만 화백에 대한 ‘팬심’으로 적극적인 출연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특히 싸이는 냉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완냉’하는 엄청난 먹방으로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 제작진은 여자 출연자 중 가장 음식을 잘 먹은 사람으로 배우 김희선을 꼽았다. 자기가 출연한 드라마 ‘미스터 Q’의 원작자인 허영만 화백에 대한 팬심으로 나오게 됐다는 김희선은, 가녀린 외형과 달리 평소 갈비 4인분씩 먹는다며 실제 갈비를 다 먹고 후식으로 면까지 ‘흡입’하다시피 했다고. 또 제작진에게 “제발 소맥을 함께 곁들이자”고 간청해 소탈함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설거지까지 도우며 ‘찐 맛집’만 섭외

백반기행은 1차로 지역마다 가게를 30곳 정도 추린 뒤, 작가 8명이 4조를 꾸려 3박 4일이나 4박 5일에 걸쳐 답사한다. 이때 백반기행 제작진임을 철저하게 숨기고 손님처럼 방문해 실제 나오는 음식을 먹어보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고. 식당 목록은 각 지역의 지인과 음식 관련자를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재래시장 관계자나 농어촌 기관장, 이장님 등 지역 토박이들에게 찐 맛집을 추천받는다고 한다. 바깥에서 식사를 많이 하는 택시, 버스 기사들의 추천도 자주 받는다.

일곱 번 방문해 식당 설거지까지 하며 일손을 도왔지만 결국 섭외하지 못한 식당도 있다. 제작진은 “언젠가는 섭외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연락을 드리고 있다”며 “무엇보다 섭외의 가장 큰 원동력은 ‘식객 허영만’에 있다”고 했다. “전국에 허영만 선생님 팬이 정말 많더라. 앞으로도 백반을 넘어 한국의 식문화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며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음식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