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뉴스에서 실제 발언과 다른 자막을 내보냈다가 ‘남녀 편가르기’ 논란을 빚었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완구인 ‘당근칼’의 위험성을 보도하면서 남자 초등학생이 “여자애들도 해요”라고 말한 것을 “여자애들 패요”라는 자막으로 내보낸 것이다. 항의가 폭주하자 MBC는 사과했지만, 네티즌들은 리포트를 작성한 기자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까지 찾아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MBC는 21일 메인 뉴스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에서 최근 초등학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위 ‘당근칼’의 위험성을 짚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당근칼은 당근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칼인데, 해당 리포트는 이 당근칼이 “수박은 물론 파인애플 껍질도 뚫는” 파괴력이 있다면서,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문제는 인터뷰에 응한 한 남자 초등학생이 실제로 한 발언과는 다른 자막을 달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삭제된 해당 리포트를 보면, 기자는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대뜸 가방에서 당근칼 3개 나 꺼내 보여줍니다”라며 그와 짧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기자가 ‘당근칼 다 써봤어요?’라고 묻자 학생은 “네, 제가 씁니다. 보여 드릴까요? 이거는 두 개로, 쌍으로 돼 있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기자는 ‘어떻게 가지고 놀아요?’라고 다시 물었고, 초등학생은 당근칼 사용법을 기자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 찌를 수 있어요. 여자애들도 해요.”
그러나 초등학생의 실제 육성과는 다른 자막이 붙었다.
“여자애들 패요.”
해당 리포트가 자막만을 잘못 달아 내보낸 것도 아니었다. 원 리포트 본문에도 “여자애들 패요”라는 문장이 그대로 포함됐다. MBC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리포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생 (음성변조)] “<어떻게 가지고 놀아요?> 이렇게 해 가지고 찌를 수 있어요. 여자애들 패요.”
보도 직후에는,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터뷰에 나온 초등학생을 향한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MBC가 단 자막대로 초등학생이 실제로 “여자애들 패요”라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 초등학생의 성별이 남자인 점을 거론하며 “한남(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용어) 유충” “벌써부터 여자 패고 찌르는 연습하네” “남자로 태어나면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MBC가 단 자막이 이상하다’는 반응도 동시에 나왔다. 특히 리포트 영상 배속을 느리게 하면, 더 분명하게 “여자애들도 해요”라고 들린다는 것이다. ‘자막 오류’라는 의견이 금세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론이 됐고, 비난은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기자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리포트를 쓴 기자가 ‘여자’라는 점을 언급하며 ‘남성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그 같은 자막을 달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해당 기자의 개인 유튜브 채널을 찾아가 “어린 남자 아이를 이용해서 교묘히 가짜혐오뉴스 부끄럽지 않나” “다 큰 성인이 초딩 남자아이 매도하는 기사 쓰는게 맞느냐” 같은 댓글을 달고 있다.
MBC는 논란이 일자 처음에는 원본 리포트를 삭제하는 조치만 했다. 문제가 된 인터뷰 부분만 삭제한 리포트 수정본을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올렸다가, 22일 오후가 돼서야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MBC는 “보도에 포함된 초등학생 인터뷰 내용 가운데 ‘여자애들도 해요’라는 부분의 자막을 ‘여자애들 패요’로 잘못 방송됐다. 이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인터뷰에 응해준 초등학생과 부모님께도 사과드린다. 아울러 앞으로 뉴스 보도에 있어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를 거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