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취업·결혼·육아 등은 삶에서 누구나 마주하는 관문이지만, 그 ‘평범한’것들을 하나하나 일궈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카카오웹툰 ‘더 그레이트’(2023)가 지난 26일 ‘제1회 월드 웹툰 어워즈’에서 심사위원장상을 받았다. 판타지와 스릴러, 게임 스토리 기반의 웹툰 등 각종 자극적 콘텐츠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어떻게 보면 우리 주위에서 볼 수도 있는 한 여성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로 큰 인기를 얻고 상까지 받은 것.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세간의 말처럼 매우 힘든 성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웹툰은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둘이 살아온 주인공 ‘유보라’가 대기업 면접을 보러 가던 중 만난 택시 기사 ‘기석호‘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뒤 두 아이를 홀로 키워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학창 시절부터 취업과 결혼, 육아까지 한 여성의 일생을 마치 평양냉면의 맛처럼 ‘슴슴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두 작가는 “인기의 비결을 물으신다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아왔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 독자들의 무언가를 건드렸고,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며 “청소년기부터 중장년까지 한 평생을 보여준 주인공의 ‘평범함’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범하지만 평범치 않은 엄마의 이야기를 그려보자”는 것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이유.
지난해 8월 연재를 시작해 이달 19일 마지막화(59화)를 낸 ‘더 그레이트’는 사실 4년 전에 창고에 처박혔던 비운의 작품이다. 당시 광진 작가가 기획했던 이 작품에 대해 업계에선 “이도 저도 아니고, 너무 평범하다”는 평가 일색이었다. 그러던 중 광진은 일흔 살 아버지가 발레리노의 꿈을 실현하는 내용의 작품인 지민 작가의 ‘나빌레라’를 봤고, ‘그래, 이번엔 어머니의 여정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지민 작가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광진 작가는 “조미료 팍팍 넣은 프랜차이즈 냉면보다 한번쯤 다시 생각나게 하는 담백하고 소소한 평양냉면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담백하고 아름다운 그림체를 가진 지민 작가와의 협업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 밝혔다.
12년 차인 광진 작가는 ‘더 그레이트’에 대해 “제 경력을 통틀어 가장 자신 있는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많은 자영업자에게 이른바 ‘박서준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태원 클라쓰’ 때보다 작가로서 더 성장했다고 느낀다고도 했다. 광진보다 2년이 더 많은 경력 14년 차인 지민 작가는 “10대부터 50대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다 그려본 건 처음”이라며 “그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해 시간이 흐르는 것에 따라 그렸다면,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와 함께하며 ‘유보라’의 인생을 대리 체험해본 묘한 작품”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어릴 때부터 만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일찍부터 작가의 꿈을 가졌다. 광진 작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리는 것에 취미를 가져 푹 빠져 살았다”며 “당시 슬램덩크, 나루토, 원피스 등을 보며 전율을 느꼈고,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민 작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수학책 빈 공간에 문제 풀이 대신 사람 얼굴을 그리는 낙서를 자주 하곤 했다”면서 “서양화를 전공했던 언니가 그걸 보고 ‘얘 그냥 그림 그려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진심이 섞인 핀잔(?)을 듣고서 그때부터 진로를 바꿔 만화쟁이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이미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광진 작가는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와 같은 워맨스(우먼+로맨스) 장르와 K장녀의 이야기 그리고 누아르와 밴드 만화 등 동시다발적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민 작가는 “원래 액션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편인데, 어느새 드라마 장인이 돼 있더라”라며 “이번엔 작심하고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고어틱한 다크 히어로 액션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진(37)·지민(38) 작가
광진(37) 글 작가는 2013년 데뷔해 드라마로도 방영된 카카오웹툰 ‘이태원 클라쓰’(2016)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 두엽 작가와 함께 네이버웹툰 ‘링크보이’를 내며 인기를 얻었다. 2010년 데뷔한 지민(38) 그림 작가는 HUN 작가와 협업한 카카오웹툰 ‘나빌레라’(2016)와 ‘랑데부’(2019)로 이름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