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고기, 성게, 복어, 청어, 남생이···. 6세기 신라 왕릉급 무덤인 경주 서봉총에서 호화로운 제사 음식들이 확인됐다. 문헌 기록에 없는 신라 무덤 제사의 일면을 밝힌 데다 당시 신라 왕족의 고급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한 자료라 주목된다.

경주 서봉총 재발굴에서 확인된 돌고래 전지골 그림 및 모식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은 “1920년대 일제가 조사한 서봉총을 2016~2017년 재발굴한 결과, 서봉총 남분의 둘레돌[호석·護石]에 있던 큰 항아리 안에서 물고기·조개류 등 동물 유체 총 7700점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중 어류는 5700점, 조개류 1883점. 특이하게 바다포유류인 돌고래와 파충류인 남생이가 확인됐으며,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 발견된 동물 유체는 모두 물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소나 돼지, 닭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물관은 이 같은 성과를 담은 ‘경주 서봉총 재발굴 보고서’를 발간했다.

경주 서봉총 남분 큰항아리 내부에서 동물 유체가 발견되는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왜 재발굴했나

경주 서봉총은 서기 500년 무렵 만든 신라 왕족의 무덤이다.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형태인 쌍분으로, 먼저 만들어진 북분(北墳)에 남분(南墳)이 나란히 붙어 있다. 북분은 1926년, 남분은 1929년 각각 발굴됐다. 세 마리 봉황이 조각된 금관이 출토됐고,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신혼여행차 한국에 왔다가 이 발굴 현장을 방문했다 하여 일제가 이 무덤에 서봉총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웨덴(瑞典)’과 ‘봉황’에서 한 글자씩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라 붙인 것이다.

보물 제339호 서봉총 금관. 높이(새모양 장식 포함) 30.7㎝.

당시 발굴을 맡았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1946년까지 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다수의 황금 장신구가 나오는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무덤인데도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었다”며 “일제의 부실 발굴을 보완하기 위해 2016~2017년 서봉총을 재발굴한 후 이번에 그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고 했다.

서봉총 재발굴에서 확인된 돌고래 동물 유체(좌측 전지골)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돌고래, 복어…호화로운 식생활

특히 당시 제사 음식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성과다. 북분·남분 모두 둘레돌 외곽을 따라 2m 간격으로 큰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제사 음식을 수북히 담았다. 특히 남분에서 출토된 큰항아리 내용물을 보면, 패류 33종, 어류 14종, 갑각류 2종, 성게류 1종, 포유류 1종, 파충류 1종 등 총 52종이 확인됐다. 전복, 뿔소라, 가리비, 굴, 주름다슬기, 상어류, 청어, 감성돔, 볼락, 민어···. 김건수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포유류는 유일하게 돌고래가 확인됐는데, 돌고래는 머리뼈를 먼저 절단한 후 왼쪽 상반부 일부를 잘라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주 서봉총 재발굴에서 확인된 큰청홍따개비(1), 거북손(2), 보라성게(3)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박물관은 “신라 무덤제사의 일면을 밝힐 수 있는 정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살아있는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라고 했다. 복어 요리, 성게, 고래 고기는 당시 신라 왕족들의 호화로운 식생활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얘기다.

또 이를 통해 무덤이 축조된 계절까지 추정할 수 있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조개는 산란기 때 독소가 있어 먹지 않고, 청어와 방어의 회유 시기 등을 고려할 때 대부분 가을철에 포획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무덤 축조가 완료된 직후 제사음식을 넣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봉총 남분은 6세기 전반 어느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 연구사는 “신라에서 무덤 주인공을 위해 귀한 음식을 여러 개의 큰항아리에 담아 무덤 둘레돌 주변에 놓고 제사지내는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 경주 서봉총을 재발굴하는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북분 지름은 46.7m, 일제가 못밝힌 무덤 규모 확인

박물관은 이번 재발굴을 통해 일제가 밝히지 못한 무덤의 규모과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일제는 북분의 지름을 36.3m로 판단했으나 재발굴 결과 46.7m로 밝혀졌다. 또 서봉총의 무덤 구조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적석목곽묘]의 돌무지는 금관총과 황남대총처럼 나무기둥으로 만든 틀을 먼저 세우고 쌓아올렸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박물관은 “서봉총 재발굴 성과를 적극 활용해 전시 등으로 공개하고, 신라 왕족의 무덤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추가 연구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