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조선 21대 왕 영조의 일곱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였던 화협옹주(和協翁主·1733~1752)의 무덤이 발견됐다.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협옹주는 어머니를 닮아 미색이 뛰어났다고 전하지만 19세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덤에선 영조가 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글을 새긴 지석(誌石·죽은 이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해 묻은 돌판)과 함께 옹주가 생전 사용했을 빗, 거울, 눈썹먹 등 화장도구가 나왔다.

2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현대식으로 재탄생한 화협옹주의 화장품이 공개됐다. 청화백자를 되살린 화장품 용기도 새로 제작한 것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특히 눈길을 끈 건 소형 청화백자합 10점과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 당대의 화장품류로 추정되는 가루와 액체가 채워져 있었다. 조선시대 왕실 여인들의 화장 문화를 밝힐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출토된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 화협옹주의 유물이 현대 화장품으로 재탄생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2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화장품 제조사 코스맥스와 함께 연구·제작한 백색 크림과 파운데이션, 입술 보호제 등 현대식 화장품 3종을 공개했다. 청화백자의 문양과 형태를 살린 화장품 용기도 현대식으로 제작했고, 기록으로만 남겨진 ‘맑고 침착하고 효성 깊은’ 화협옹주를 상상으로 구현한 캐릭터도 선보였다.

문화재청은 앞서 화협옹주 무덤에서 나온 화장품 유물 53건 93점을 보존처리·분석해 재질과 성분을 확인했다. 갈색 고체 크림류에선 밀랍 성분이 나왔고, 백색 가루에는 탄산납과 활석, 적색 가루에는 수은이 포함돼 있었다. 액체가 들어 있던 용기에선 황개미 수천 마리가 식초에 녹아 있었다. 왜 개미를 화장품 재료로 썼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정용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탄산납과 수은 등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제외하고, 발색력 향상과 보관 기간 연장을 위해 현대 안료 등을 추가해 제작했다”고 했다.

화협옹주 화장품은 올 연말 ‘프린세스 화협’이라는 상품명으로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한국문화재재단 온라인숍에서 판매를 시작하고, 이후 박물관 기념품숍과 면세점 등에서도 판매할 계획이다. 김영모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은 “문화재가 유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현재 삶 속에 함께하게 됐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