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배경 드라마에 중국풍 소품과 의상을 사용해 시청자 반발을 산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SBS

조선 시대 배경 드라마에 중국풍 소품과 의상을 사용해 시청자 반발을 산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송 2회 만에 폐지됐다. 26일 SBS는 “지상파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조선구마사’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SBS는 전체의 80% 촬영을 마친 제작사에 방영권료 대부분을 지급했지만, 시청자들의 거센 퇴출 요구에 이례적으로 백기를 들었다. 수십 회에 달하는 드라마 특성상 시청자 반발로 편성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방송을 폐지한 건 처음이다. 삼성전자·LG생활건강·에이스침대 등 기업들이 광고 철회 의사를 밝힌 것도 폐지 결정의 중요한 이유가 됐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이 드라마가 그동안 축적된 반중(反中) 정서가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고대사를 자국사의 일부로 왜곡한 중국의 동북공정,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시작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규제) 등을 겪은 대중은 “중국이 거대 시장과 자본을 앞세워 K콘텐츠 전반에 ‘문화의 동북공정’을 벌이고 있다”며 반감을 키워왔다. 지난 14일에는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배우 송중기씨가 중국 기업 즈하이궈의 간편 비빔밥을 먹는 PPL(간접 광고) 장면이 도마에 올랐다. 중국어로 ‘한국식 파오차이(중국식 절임채소)’라 적힌 해당 회사의 다른 비빔밥 제품이 있을 정도여서 “김치 원조는 파오차이”란 중국 입장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제작사는 중국 제품 노출을 없애겠다며 시청자를 달랬다. 또 중국 김치 공장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하며 중국발(發) 김치 파동이 일기도 했다. 알몸 남성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을 본 대중들은 중국산 김치를 보이콧했다. 비난의 불똥은 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 국내 김치 수출 기업으로 튀었다. 한국 김치를 중국에서 팔 때 ‘파오차이’로 표기한다는 이유에서다.

방송·유튜브·게임에서 한국 문화가 중국산으로 둔갑할 때마다 대중은 반발했다. 중국 유명 유튜버가 “한복은 중국 전통 의복 한푸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자 한국인은 이메일·댓글로 집단 항의를 펼쳤고, 지난달 중국 모바일 게임에서 한복이 중국 전통 복식으로 소개되자, 방탄소년단은 미국 패션지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옷으로서 한복을 제일 좋아한다”고 발언해 국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공정함에 민감한 MZ세대(1981~2000년대 초반 출생)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청와대 국민청원 등 여러 창구를 통해 조선구마사 문제를 제기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2030세대의 적극적인 행동력과 의사 개진에 4050세대가 동조하면서 파급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한령과 코로나 사태 등에서 보인 중국의 행보에 염증을 느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반중 캠페인을 지지하면서 소비자 운동이 힘을 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중국 모습은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며 “자국 중심주의의 국제적 유행 속에서 우리 국민도 실력 행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를 앞세운 맹목적 반중이나 혐중은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팝이나 게임, K드라마가 세계의 환호를 받으면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는 중국을 비롯한 다국적 자본이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IT(정보 기술) 업체 텐센트는 넷마블 등 국내 대형 게임 업체의 주요 주주이면서 YG엔터테인먼트 같은 엔터 기업의 큰손 투자자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형화된 드라마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선 PPL을 비롯한 해외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고,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잘못된 중국 주장을 사실로 바로잡는 노력과 별개로 감정을 앞세워 중국을 비난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