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의원(왼쪽)과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14일 한예종 음악원에서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을 연습하고 있다.

“총장과 의원 이전에 선생님뻘이시라 첫 레슨 받는 맘으로 왔어요(웃음).”

14일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출신의 김예지(41) 국회의원이 피아니스트 김대진(59) 한예종 총장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둘은 나란히 피아노에 앉아 드뷔시의 피아노 연탄곡(連彈曲)인 ‘작은 모음곡’을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호흡을 맞춘 건 이날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잘못 치면 혼날까 봐 점심 먹은 게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엄살과는 달리 드뷔시 특유의 프랑스 인상주의 향취가 이들의 네 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저음 파트를 맡은 김 총장은 악보를 넘기며 연주했지만, 고음을 맡은 김 의원은 악보를 모두 외워서 왔다. 김 의원은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 때문에 좀처럼 연습 시간이 나질 않아서 주말마다 악보를 보며 외웠다”고 했다.

이들은 오는 17일 한예종 음악원 이강숙홀에서 이 연탄곡을 들려준다. 한예종 음악원에 재학 중인 장애 학생 4명과 비장애 학생 5명이 함께 연주하는 ‘포르테 콘서트’에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현재 한예종 재학생 3600여 명 가운데 장애 학생은 23명이다.

지난 9월 김 총장은 김 의원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협주 아이디어를 건넸다. 김 의원도 선뜻 응했다. 김 의원은 “장애인은 부족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 가진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정서적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취지에 공감했다”고 했다. 연주곡은 두 사람이 카톡을 주고받으며 정했다. 김 의원이 “예전 한국이나 외국에서 친구들과 즐겨 연주하던 곡”이다.

선천성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시각 장애를 갖고 태어난 김 의원은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를 마쳤다. 그는 “어릴 적 선생님을 찾는 것과 점자 악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외국에 편지와 이메일을 직접 써서 악보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비장애 연주자들과 함께 20년간 실내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연습 과정에서 손길이 닿거나 부딪치는 경우도 많은데, 정치에서 여야(與野)와 소수 이해 집단의 목소리를 조율하는 과정과 닮았다”고 했다.

이날 이들은 너덧 번씩 연습을 거듭했다. 김 총장은 “연주는 듣는 귀에서 출발해 건반의 감촉에서 끝나는 행위”라며 “그렇기에 악기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귀와 손끝”이라고 했다. 김 총장은 앞으로 무용·연극·영상원에서도 장애·비장애 학생들이 함께하는 공연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원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연주처럼 시작과 끝이 잘 맞으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