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자우너가 자신의 책과 오바마 대통령의 책이 서점 진열대에 나란히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서 찍은 인증 샷. / 미셸 자우너 페이스북

“한국 신문하고 인터뷰한다니 어떤 여정을 완주한 느낌이에요. 한국 갈 때 엄마가 비행기에서 들뜬 표정으로 한국 신문을 집던 기억이 생생해요. 특별한 여행의 전주곡 같았죠!”

흥분이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느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느낌표와 함께 감정을 대방출했다. 작년 미국 서점가를 달구고 최근 한국에 상륙한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의 저자 미셸 자우너(33).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2014년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뒤, 그녀는 H마트(미국의 한국 식료품 체인)에 가서 해물짬뽕 먹는 할머니, 뻥튀기 과자 든 아이 모습에 무너진다. 절절한 그리움 담아 미각에 새겨진 엄마의 유산을 쓴 첫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작년 연말 추천한 13권 중에 들었고, 뉴욕타임스·아마존 ‘올해의 책’에 꼽혔다. 본업까지 주목받았다. 오랜 기간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라는 이름의 무명 밴드로 활동하다가 2022 그래미상 ‘최고 신인상’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 두 부문 후보에 올랐다.

‘H 마트에서 울다’ 저자 미셸 자우너. 그는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Tonje Thilesen

◇엄마의 유품, 김치 냉장고

“내 인생 처음 투표한 대통령, 오바마가 추천하다니! 짜릿했죠.” 들뜬 기분을 이내 가라앉히고 말했다. “부모님께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많이 공감했어요. 제 개인 이야기였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진 듯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앨범 두 장을 내면서 감정을 쏟아냈는데도 여전히 해소가 안 돼 책을 쓰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내면의 슬픔을 여러 면에서 들여다봤어요. 엄마를 더 깊이 알게 됐고 우리 모녀의 사랑을 보존하게 됐답니다.”

아버지는 1980년대 중고차 세일즈맨이었다. 교육받으러 한국에 왔다가 호텔 직원이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자우너는 한국에서 태어나 9개월 때 미국으로 갔다. 오리건주 유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펜실베이니아주 브린모어대에 진학해 문예창작과 영화를 공부했다.

엄마와 함께한 어린 시절. / 미셸 자우너 페이스북

한국 음식은 엄마를 추억하는 슬픔의 고리이자 치유 도구. “한식을 만드는 것은 엄마와 공유한 추억으로 가는 일종의 의식이자 엄마와 내가 연결된 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이에요. 게다가 아프거나 지친 날 무의식적으로 당기는 영혼의 음식!” 이날 아침에도 비가 와서 미역국과 소고기전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냉장고엔 묵은 김치, 총각김치, 고추장, 된장이 상시 대기 중. “언제라도 후다닥 김치볶음밥 만들고 찌개 끓여 먹기 위해서”란다.

“가끔 야식으로 맥주에 땅콩과 마른 오징어 안주를 곁들여요. 물론 오징어는 고추장, 마요네즈에! 그런 나를 보면 엄마 모습이 떠올라요.” 엄마와의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뭘 대접하고 싶을까. “김치찌개. 대체 뭘 잘못했기에 엄마 찌개 맛이 안 나는지 물어볼래요!” 가장 그리운 한국 음식은 간장게장. 팬데믹이 끝나고 한국에 간다면 ‘1일 1 게장’이 목표다. 그녀는 한국 음식을 모두 한국 발음으로 표기했다.

엄마의 죽음 후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 깊은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에게 그녀가 미국 사회에 정박할 수 있는 닻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엄마가 세상에 정박할 수 있던 닻이었음을. “엄마가 전업 주부로 집에만 계셔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야심, 직업윤리, 세상을 관찰하고 감동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죠. 예술적 감수성도 물려주셨고요. 어떤 점에선 제가 엄마에게 목표 의식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꼬마 애인이기도 했고요.”

유품을 정리하면서 엄마의 분신 김치냉장고를 가져왔다. 시댁(남편은 밴드 동료)에 맡겼다가 업스테이트 뉴욕에 음악 스튜디오로 쓸 오두막을 장만하면서 기어이 옮겨왔다. 코로나로 격리하는 동안 직접 담근 각종 김치로 냉장고를 채웠다. “팬데믹 때문에 목욕탕 가서 때 민 지도 한참 됐는데 조만간 꼭 갈 거예요. 때를 밀고 김치 담그는 행위는 엄마를 오롯이 느끼는 의식이랍니다.”

각종 한국 과자를 집에 쌓아두는 미셸 자우너./ 미셸 자우너 페이스북

◇기적 같은 성공, “엄마가 신의 목 졸랐을지도”

갑자기 인기 가수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 기적을 두고 책에선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제가 성공하는 모습을 못 보고 엄마가 눈을 감으셨는데,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글’과 ‘음악’은 내 열정의 대상이자 생계 수단. 두 재주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고 했다.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공연 모습. © Mike Ferdinande

밴드명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일본식 아침)’는 우연히 본 일본 스타일 조식 사진이 맘에 들어 충동적으로 붙인 이름. 복잡한 한일관계 때문에 불편해하는 한국인도 있다고 하자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처럼 듣기 좋아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었다. 돌아간다면 당연히 다른 이름을 쓸 거다. 언젠간 바꿀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트위터 프로필엔 ‘PSA: I’m Korean(공지: 나는 한국인입니다)’이라고 일본계가 아님을 밝혔다.

얼마 전 뉴욕 한인회에서 ‘올해의 차세대 상’을 탔다. 마침 ‘올해의 인물상’ 수상자는 H마트 권일연 회장. “제목 때문에 H마트 쪽에서 불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요. 정말 고맙다고 하셨어요.”

얼마 전 미국 NBC 인기 토크쇼 ‘더 투나이트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모습. / 미셸 자우너 페이스북

◇책 영화화, 핑클 노래 넣고 김수미 캐스팅하고 싶어

자우너는 책에서 “나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고 했다. 지금은 어떨까. “다양성이 부족한 작은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엔 힘들었어요. 남들과 다른 모습이 싫어 그들에게 동화되려고 애썼죠. 이젠 나이도 들었고 대도시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훨씬 안정적이 됐어요. 게다가 전에는 없었던 저와 비슷한 한국계 미국인의 창작물도 많아졌고요.”

최근 한류 열풍엔 진심으로 뿌듯해 했다. 지난 밴드 투어 땐 버스 안에서 멤버들과 ‘오징어 게임’을 단체 관람했을 정도다.

미셸 자우너가 '오징어 게임' 속 '영희' 인형처럼 입고 공연하는 모습. / 재키 리 영

얼마 전 외신에선 책이 곧 영화화되고 그녀가 음악감독을 맡을 예정이란 보도가 나왔다. 계획을 귀띔해달라고 했다. “징크스 때문에 미리 말하기 두렵지만 한국에 방문할 듯해요. ‘핑클’이 정말 인기였던 기억이 있어요. 그들이 음악 사용을 허락해주기를! 참, 얼마 전 사촌이 추천해 1박 2일 김수미 배우 편을 봤어요. 어찌나 재밌던지 푹 빠졌답니다. 그녀가 꼭 배역을 맡아주시길!”

다음 책 계획도 세웠다. 한국에서 1년쯤 살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담고 싶단다. “엄마가 저더러 늘 한국에 6개월에서 1년 정도 살면 한국어가 유창해질 거라고 하셨어요. 과연 그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까요? 하하.”

'H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