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틴 하델리히는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다. 그는 “독일어가 모국어이고, 어릴 적부터 악기를 한 것도 독일적 전통 덕분”이라고 답했다.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페이스북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38)는 다섯 살 때 악기를 시작한 전형적인 영재 출신이다. 일곱 살 때 데뷔 연주회를 열었고 이듬해부터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하지만 15세 때 그에게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가족 농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독일로 급히 날아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의료진은 앞으로 연주가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재활 끝에 2006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클라라 주미 강(2010년), 조진주(2014년) 같은 한국 연주자들이 정상을 차지한 명문 대회로도 유명하다.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에 선정된 하델리히를 최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조진주와 클라라는 물론, 김선욱과 조이스 양 같은 한국 피아니스트들과도 즐겨 연주한다. 줄리아드 재학 시절부터 느꼈지만 한국은 젊은 음악가들의 교육이 무척 체계적이고 훌륭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31일과 4월 1일 서울시향과 협연하기 위해 내한할 예정이다.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가 고향이다. 스무 살 때 미국 줄리아드에서 유학한 ‘복합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그는 예일대 음대 ‘상주 음악가’로 임용됐다. 하델리히는 “아직은 학생이 너덧 명 정도이지만, 머릿속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저 역시 학생들로부터 많은 걸 배운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서울시향

그의 연주나 음반에서는 언제나 익숙함과 낯섦의 ‘이색 조합’을 느낄 수 있다. 잘 알려진 고전·낭만주의 작품과 상대적으로 낯선 현대음악을 함께 들려주기 때문이다. 19세기 독일의 브람스와 20세기 헝가리 작곡가 리게티의 협주곡을 묶어서 녹음하는 방식이다. 그는 “얼핏 브람스와 리게티의 작품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는 것 같지만, 마지막 3악장에서 헝가리 춤곡의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면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공통점과 역설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연주자의 임무”라고 말했다.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영국 현대음악 작곡가 토머스 아데스(51)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들려줄 예정이다.

바이올린과 작곡을 함께 공부한 그는 하이든·모차르트·브람스의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도 직접 작곡한 카덴차(협주곡의 화려한 솔로 연주)를 집어넣는다. 그는 “단지 과거의 명연주자들이 남긴 카덴차를 고르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내가 직접 작곡하면 작품에 대한 관점이 더욱 분명해지고 가까이 다가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걸작에도 자신만의 뚜렷한 인장(印章)을 찍는 셈이다. 이번 모차르트 협주곡 2번에서도 자신의 카덴차를 들려줄 예정이다.

인터뷰 말미에 양해를 구한 뒤 과거의 사고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어렸을 적 겪었던 일로 인해서 분명 정신적 상처(트라우마)가 남았지만, 삶의 의미와 미래, 음악에 대해 많이 생각할 기회가 됐고 덕분에 어른이 된 것 같다”면서 “분명한 건 음악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깨닫게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더하거나 덜어낼 것이 없는 답변 같았다.